여러분, 잘 지내고 계셨나요.
5개월 만에 씁니다.
나아졌다고 믿었는데, 나는 여기에 그대로 있었다.
라는 문장을 1년 전에도, 2년 전에도 똑같이 썼던데
일기장을 들춰보니 그러합니다.
움직이고 있고, 변화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나는 나한테 계속 배신당하고 있습니다.
변할 줄 알았지만? 웃기는 소리. 나약하고 하찮은 고민덩어리. 바보!
넌 똑같아.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라는 걸 나는 처음부터 믿지 않습니다.
2023년 12월, 나는 심리학 대학원 입시를 준비했습니다. 하루 10시간 넘게 공부했고, 매진했습니다.
대학원에 입학하면 임상심리상담사가 될 요량이었습니다.
아빠가 좋아하는, 흰 가운 입는 직업.
가는 길이 멀고 고되긴 하겠지만 그 직업만 갖게 되면 나는 나도 구하고, 사람들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꼬박꼬박 100만원씩 저축을 하고, 매일 아침 같은 곳으로 출근을 하고, 사람들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2024년 1월, 나는 대학원 입시를 포기했습니다.
공부는 쉽고, 편안했습니다. 이대로라면 좋은 입시 결과도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과연...)
하지만 나는 이 직업이 나를 구할 수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번뜩 깨달았습니다.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좋은 직업, 상황, 돈 그런 거 처음부터 가져본 적도 없으면
'그것들은 다 어차피 나를 바꿀 수 없어.'
왜 그렇게 확신하는 거야?
일단 가져보고 말을 하라고,
엄마는 말합니다.
그것들을 누리다보면 너는 안정되고, 편안한 사람이 되어 있을 거야.
"일단 가고 말해."
고등학교 담임 쌤의 말에 좋은 대학에 갔는데 뭐가 바뀌던가요?
어른들의 말은 자꾸 나를 배신합니다.
며칠 전에 언니가 나보고 회계사가 되라고 말했습니다.
회계사는 유진이에게 꼭 맞는 직업일 것 같아,
나는 멍청해서 회계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차치하고, 내가 회계사가 되면, 나는 달라질까요?
누가 그렇다!고 확답을 내려 준다면 나는 어떻게든 회계사가 되겠습니다.
나아졌다고 믿었는데, 나는 여기에 그대로 있었다.
2025년에도, 2026년에도 나는 똑같은 문장을 쓰게 될까요?
나는 언제 나로부터 벗어나 타인들을 진심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될까요.
내 고통이나 이야기 하는 글은 유치하고, 촌스럽고, 지루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나로부터 벗어나고 싶습니다.
결국 이런 이야기나 할 걸 알아서 편지를 안 썼습니다.
넓고, 확장된 시선과 이야기.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몰두하는 글.
뭔 소리야? 지금 내가 죽겠는데...
그렇게 또 자기혐오의 늪으로 기어들어 갔다...
하찮은 편지입니다.
그래도 쓰면서 여러분의 존재에 감사했습니다.
비 내리는 우중충한 하루지만 쨍한 사랑을 발견하는 화요일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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