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 점심으로 콩나물국과 된장가지구이를 먹고, 이불 빨래까지 마쳤으며, 저녁으로 먹을 라자냐의 식재료 장까지 본 시각. 동거인과 나는 해야할 일이 마땅히 없는 일요일 오후 2시를 막막한 마음으로 견뎌내고 있었다.
"우리 이제 뭐하지...?"
동거인은 멍한 표정으로 스크롤을 내리는 중이었다. 릴스 혹은 유튜브 쇼츠에 몇 시간이고 시간을 저당 잡힐 수 있는 그녀였다.(누군들 예외가 있겠냐만은...) 스마트폰은 다채롭고, 위험한 감정들을 끌어내곤 한다. 자격지심, 무기력, 회의주의. 결정적으로 불안.
위험천만한 그것으로부터 그녀를 떼어놓지 않으면 2시간 뒤 그녀가 우울의 수렁에 빠진 채
"일요일을 망쳤어"
자괴하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나는 그녀의 손에서 스마트폰을 힘주어 빼앗았다. 그리고 밀린 설거지를 처리하기 위해 부엌으로 향하며 말했다.
"이런 건 쉬는 게 아니야."
고무장갑을 끼는 나를 잠시 바라보던 그녀는 비로소 진짜 쉼을 찾기로 결심한 듯 소파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녀는 몇 시간 뒤 휴대폰을 빼앗아줘서 고맙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나는 안심한 채 설거지를 시작할 수 있었다. 종종 나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타인에게 해줌으로써 나의 진짜 욕구를 확인하곤 한다.
'할 일이 없다'는 감각 뒤편에 실질적으로 해야 할 일이 없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급박하진 않지만 어쨌든 해야만 할 것들을 유예하며, 강박적으로라도 쉬어볼 요량으로 '할 일이 없다' 포장은 하지만 실은 내일의 내 일이 차곡차곡 저장되고 있는 듯한 불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태일 뿐이 아닐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표면적으로는) 설거지하기, 부산 여행 짐 싸기, 기록하기, 책상에 널려 있는 사물들 정리하기 정도가 전부다. 하지만 이런 일들 사이 사이에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지만 "하는 게 좋을걸~?"하고 나를 자극하는 일들이 숨어 있다. 영상 편집하기, 글쓰기, 부산 여행 계획하기, 책 읽기.
프리랜서라는 단어를 개념화하면 할 일이 곳곳에 널려 있는 사람, 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나에겐 시도 때도 없이, '일' 이 찾아든다.
이렇게나 일이 많은데 할 일이 없다니. 할 일이 없다는 사람은 앞으로 믿지 마시라.
소파에 누워 있는 동거인은 조용했다.
"자?"
대답이 없었다. 힐끗 돌아보니 그녀는 열린 창문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이 집에서, 처음으로 하늘을 봐."
내 쪽에서는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맞은편 건물인 W모텔 간판만 보인다. 동거인은 누운 자세이기 때문에 W모텔 너머의 하늘을 볼 수 있다.
동거인은 그렇게 몇 분을 더 누워 있다가 물감과 연필, 스케치 노트를 꺼내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 속 우리 집은 커다란 건물에 가로막혀 시야가 차단되고, 햇빛도 들지 않아 삭막한 집이 아니었다. 파란 하늘이 곧 쏟아져 들어올 듯한 풍경으로 담겨 있었다.
바닥에 앉거나 누워서 이리저리 시야를 옮겨 바깥 풍경을 봤다면 나는 지금과는 다른 것들을 진작 볼 수 있었을지 모른다.
누워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누운 자세에서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나는 설거지를 끝내고, 잠시 누워 하늘을 바라보길 선택하는 대신 또다시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역시나 누워버리기에는 실패했지만
별을 따기 위해선 하늘을 봐야 한다. 하늘을 보기 위해선 누워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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