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기 전 손 풀기 용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생각 없이 술술 쓰는 글은 타자를 치는 손의 감각을 깨우고 쓸 수 있다는 용기를 준다. 아, 지금 내 옆에는 뜨거운 생강차가 있다. 엄마가 만들어준 생강차를 내 손으로 꺼내 먹을 만큼 심한 목감기를 앓고 있다. 생강차 되게 싫어했는데 오늘 다시 먹어보니 맛있다. 싫었던 것이 좋아지고, 좋았던 것은 싫지 않고. 뭉근하게 좋은 것들만 달인다. 그런 걸 달여 마시면 약이 된다. 아무것도 싫지 않은 일상이다.
며칠 전부터 글쓰기 학원에서 일을 시작했다. 19살에 처음 학원에 발을 내디뎠을 때와 변함없는 공간, 6년이나 지났는데 전혀 늙지 않은 선생님, 나는 시간의 흐름이 비껴간 이 공간이 무서울 정도였다. 어쩌면 변하지 않은 건 나도 마찬가지. 나는 펜을 쥐고 처음 나의 글을 쓰기 시작했던 그때처럼 이 학원에 오면 싸한 긴장감을 품게 된다. 선생님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입시와 글에 대한 무서움일 수도, 그런 게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
선생님과 나는 나의 글을 피드백 받곤 했던 그 자리에 똑같이 마주 앉았다.
-이런 건 다 부업이야.
선생님은 말했다.
-나는 부업에 얽매여 있는 시인이지만, 여전히 애쓰고 있어. 시를 쓰고 있어.
선생님은 다시 말했다.
-공장 일을 할 때 가장 많은 시를 썼어. 힘들 때 써지는 거야.
그러면서 선생님은 내 앞으로 계약서를 내밀었다. 일단은 한 달, 같이 일을 해보자고 했다. 선생님이 내민 계약서는 양식이 갖춰져 있지 않고 엉성했다. 꾸밈이 없어서 거짓이 없어 보였다. 꼭 필요한 시급과 월급, 갑과 을 정도만 큼직하게 적혀 있는 투박한 계약서를 나는 슬쩍 봤다. 슬쩍 봤는데도 시급이 너무 크게 적혀 있어서 다 보였다. 역시 당당하면 크게 적는 거다. 시급이 너무 좋아서, 약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의 시간의 가치가 선생님에겐 이 정도인 것 같아서, 선생님이 나에게 쉬어 가라고 잠깐 복을 나눠준 것 같아서. (아닌가 그냥 선생님이 돈이 많아서 그런가.)
-부업은 못 해도 돼. 여기서 네가 책임질 건 없어.
선생님은 단호하고 무서운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쌩하니 원장실로 사라졌다. 선생님은 절대 눈치를 보지 말라고 했다. 나는 너무 바쁘다고, 그러니까 너는 너의 글을 쓰고 책을 읽고 그렇게 하면 되는 거라고. 하지만 나는 벌써부터 그의 싸늘함에 눈치가 보인다.
나는 커다란 데스크에 앉았다. 수업은 거의 없고, 일도 거의 없고, 나는 오후 12시부터 5시까지 이 데스크를 지키고 있으면 된다. 커다란 책상 위에는 무엇을 놓아도 꽉 차지 않는다. 양치 도구와 나의 공책, 펜, 노트북을 올려두어도 여전히 자리가 남는다. 좁은 책상 위에 테트리스 하듯 물건을 쌓아 올리던 나의 품이 조금은 넓어진 기분도 든다.
나는 일종의 선생님의 비서다. 하지만 음식 심부름이나 커피 심부름 같은 건 없다. 선생님은 그냥 배달의 민족을 내밀어, 나에게 메뉴를 고르라고 한다. 나는 선생님에게 배달된 음식을 가져다드리며, 맛있게 드세요, 한다. 나도 나의 방에서 조용하고 빠르게 음식을 먹는다. 그게 다다.
학생들은 매일 밤 선생님에게 피드백 받을 글을 업로드 해둔다. 나는 그 글들을 하나하나 프린트한다. 그리고 선생님 앞에 가져간다. '김시연 과제 파일 오류입니다' 정도의 정보를 빠르게 전하며. 선생님은 대체로 너무 바쁘고, 예민해져 있는 상태로 오후 시간을 보낸다. 나는 최대한 그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살금살금 움직이고, 살금살금 말한다.
나는 자주 뭔가를 실수한다. 하는 일도 없는데 그런다. 어떤 학생의 과제를 누락해 프린트하거나, 상담을 기다리는 학부모에게 입시 설명회 자료를 안 주는 식으로.
선생님은 날카로운 구두 소리를 내며 터벅터벅, 데스크 쪽으로 온다. 그리고 앞을 보지 않고 비스듬히 서서, '천천히 뽑아','상담지 드려','이거 다시', '종이 채워' 암호처럼 어떤 말을 하고 사라진다. 낮고, 작은 목소리로. 나는 그런 그가 무섭다. 나는 그의 학생이었던 나로 돌아간다.
나는 학원에 조금 일찍 출근해 내가 간밤에 썼던 소설을 프린트하곤 한다. 그리고 나의 자리로 돌아와 그것들을 읽는다. 펜으로 어떤 문장을 고쳐보기도 한다. 문단과 문단을 이어보기도 한다. 선생님이 출근한 뒤에도 나는 일이 없으면 소설을 쓴다. 선생님은 힘들어야 글이 써진다고 했으면서, 나에게는 편안한 창작의 시간을 내어 준다. 나는 마음이 편해지니 드디어 소설이 써진다. 나에 대한 혐오도, 타인에 대한 미움도 없이 깨끗한 상태, 약간의 호의와 웃음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는 그런 상태로. 가끔은 선생님이 나를 배불리 먹이고, 행복하게 키워 어디다 팔아버리려는 속셈이 아닐지 의심스럽다.
나는 가끔 원장실에서 들려오는 통화 소리를 엿듣는다. 학부모의 전화를 받으면 티가 난다. 그는 무언가를 변명하고, 시달리다가 20분쯤 흘러 전화를 끊는다. 그는 욕을 하지 않는다. 조용히 담배만 피운다.
가끔 학원에 학부모가 찾아 온다. 그럼 나는 그의 용건도 모르면서 긴장부터 한다. 상담을 받으러 왔는데 상담 시간이 늦어지면 자꾸 데스크에 앉은 나에게 온다. 그리고 화를 낸다. 나는 죄송하다고 하고, 웃음을 판다. 이런 일은 다 별일이 아니다. 결제를 하러 온 학부모는 거액을 지불한 뒤에 이제 그래도 된다는 식으로, 수업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다. 추임새처럼 믿으셔라, 믿으셔라 그런다. 저도 선생님의 학생이었는데요, 좋은 대학에 갔고요, 여전히 문학을 사랑하고요, 그런 말을 더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도 학생 때 선생님이 싫었다. 작품 피드백을 받는 시간은 너무 짧았고, 선생님은 부지런하지 않아 보였다. 이 정도 돈을 냈는데, 더 열심일 수 있지 않냐고, 성심성의껏 해달라고, 화가 났었다. 내가 이 정도 돈을 냈는데.
월요일마다 나는 학생들에게 수업을 한다. 처음엔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던 아이들이 수업이 시작되고 20분만 흘러도 나를 온전히 신뢰하는 게 느껴진다. 나는 수업을 참 잘한다. 돈값 하기 위해 애쓴다. 애들이 내가 이 정도 돈을 냈는데,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학생들의 글을 보면 어떻게 장면을 다시 짜야 좋은 글이 될지 눈에 선하다. 이 정보를 어떻게 쉽게 전해야 아이들이 더 나은 글을 쓸지도 안다. 나는 배우지 않았는데도 다 알아서, 어쩌면 내가 천재 선생님이 아닐까 생각한다. 10시 넘어 학원 문을 잠그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 '오늘 수업 찢었다' 생각하며 지하철에 오른다. 그런 날이면 겨울인데 하나도 안 춥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6시, 나는 학원에서 애매한 시간에 배불리 먹은 덕에 배가 안 고프다. 머리를 쓰거나 몸을 쓰기로 한다. 헬스장에 가서 10분 달리고, 10분 천국의 계단을 타고, 40분 근력 운동을 한다. 할 수 있다. 하나만 더. 와씨 죽겠다. 못 하겠다. 나는 나한테 계속 말을 건다. 강해지거나 근육은 생기지 않을지언정 나는 나를 조그마앟게 폴짝 넘어선다. 조금씩 나를 믿게 된다.
소설을 더 쓰고 싶은 날이면 카페에 간다. 텀블러를 들고 가면 음료를 500원이나 할인해 주는 곳이다. 자매 사장님이 운영하는 그 카페의 둘째 사장님은 화목토에 출근한다. 둘째 사장님은 가게에서 음료를 마시고 가면서, 텀블러 할인까지 받는 나를 탐탁지 않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첫째 사장님이 있는 월금일에만 텀블러를 들고 그 카페에 간다. 화목토에는 텀블러를 숨긴다. 이런 것도 다 좋다. 나는 이 동네를 떠나면 가장 먼저 이 카페를 그리워하게 될 거니까, 이런 공간을 운영해 주는 자매 사장님을 좋아한다. 그러니까 그녀들도 나를 좋아해 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디저트를 주문하고, 정말 맛있다고 작고 소심하게 말한다.
그 카페에서 자주 만나는 강아지가 있다. 이름은 만두. 흰색 털을 가진 커다란 사모예드다. 나는 그를 만지지 않지만 눈 인사를 하곤한다. 만두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 꼭 나에게로 와서 주위를 맴돈다. 얘가 왜 그러지, 만두가 무심한 나를 좋아하나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란다. 사실 여기가 만두 제일 좋아하는 자리라고, 만두 언니가 말해줬다.
-만두야 우리 좋아하는 자리가 같구나.
나는 만두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만두 언니를 보며 작게 눈인사를 한다. 만두 언니는 다정하고 따뜻하게 나의 인사를 받아준다. 어쩔 땐 용기를 내 만두에게 손을 내밀기도 한다. 그 손을 만두가 가만가만 핥아준다. 나는 만두 언니를 보며 웃는다. 그러고 나면 나는 뭐든 쓸 수 있는 상태가 된다.
한글 파일을 연다.
아무것도 싫지 않은 일상이다.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