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2시 자유 수영의 입장 시간은 1시 40분이다. 우리는 정확히 1시 26분 체육관에 도착했다. 8과 내가 계획된 일정에 제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건 예외적인 일이었다. 우리는 함께라면 어디에나 어떻게든 늦곤 했고, 얼굴을 붉히며 연신 “죄송합니다” 말하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따라서 우리는 어쩐지 살짝 들떠 있었다. 사람은 그런 상태가 되면 안 가본 곳을 가곤 한다.
한 달째 같은 체육관에서 수영을 해왔는데 우리는 ‘저쪽’ 산책로를 걸어본 적이 없다. 아마도 매일 새벽, 지각을 면하고자 정신없이 달려 올라가기나 했기 때문이겠지. 목적지가 분명할 경우 어떤 길은 쉽게 잊히고, 놓친다.
“가볼래?”
우린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동시에 묻고,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애들이 축구를 하고 있는 인조 잔디 운동장을 지나고, 가파른 오르막 계단을 올랐다. 커다란 나무에서는 꽃잎이 우수수 떨어졌고, 8은 몇 번인가 재채기를 했다.
계단의 끝에서는 소란한 트로트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거대한 나무 너머로 무슨 일이 펼쳐지고 있는지 알 길이 없는 우리는 천천히 계단의 끝까지 올라갔다. 그곳에는 커다란 체육관이 있었고, 체육관 앞에는 긴 부스의 행렬이 이어졌다.
부스를 꾸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체육관 앞에는 수많은 휠체어가 세워져 있었으며 목발을 짚은 채 둥글게 모여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체육복을 입고 있다는 것. 춘천, 대구, 부산. 지역 이름이 큼직하게 박힌 운동복을 입은 그들은 지역 대표로 탁구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이었다.
<전국장애인 탁구대회>
8은 현수막을 넌지시 가리켰다. 우리는 함께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체육관 내부에는 여덟 개의 탁구대가 놓여 있었다. 각자의 구역에서 탁구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남자와 여자가, 휠체어를 탄 사람과 두 발을 땅에 디딘 사람, 노인과 청년이 서로의 상대선수로 서 있었다.
“장애의 정도에 따라 대진표를 짜게 되는 걸까?”
8이 나에게 물었다.
“그건 좀 이상한 말이야. 편견인 것 같아.”
나는 말했지만, 사실 요즘은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편견이며 차별이고, 혐오인지 나는 다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게 아니라 누군 휠체어를 타고, 누군 그렇지 않으니까..”
8은 얼굴을 붉히며 난처해했다. 왜 우리는 장애에 대해 보고, 말하고, 느끼는 것에 결국은 죄책감을 갖게 되는 건지. ‘조심!’이라는 억압이 실은 우리를 계속 입 다물게 한다. 자칫하면 무지가 들키고, 고약한 인간이 되기 십상이니까.
벽면에는 대진표가 큼직하게 붙어 있었다. 우리는 대진표의 선수들 이름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쓸어 보며 기억했다. 선수의 가족들로 보이는 이들이 체육관에 돗자리를 깔고, 무언가를 나눠 먹고, 담소를 나누며 그들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긴장감보다는 화기애애함이, 경기장을 감싼 분위기였다. 그런 경기장의 분위기가 특별하고, 편안해서 우리는 잠시 그들과 하나가 된 채 멍하니 경기를 지켜보았다.
8과 내가 오랫동안 시선이 머문 곳은 휠체어에 앉은 60대 여성 선수님의 경기였다. 그녀는 한 손으로 휠체어의 바퀴를 조종하고, 다른 한 손으로 탁구채를 쥐었다. 공의 움직임에 따라 재빨리 휠체어의 방향을 바꾸고, 탁구채를 쥔 손의 방향도 그에 맞춰 움직였다. 이 모든 것이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진행되는 광경을 감탄하며, 사실 울컥할 만큼 감동하며 지켜보았다. 그녀의 움직임은 그 어떤 춤사위보다 아름다웠다. 예술의 경지에 이른 한 편의 경기가 어떤 시간의 응축이며 결과인지 우리는 영영 알 수 없을 터였다.
탁-
라켓을 비껴간 탁구공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경기는 끝났다. 그녀는 유유히 다음 경기가 있는 탁구대를 향해 바퀴를 굴렸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끝까지 눈으로 뒤쫓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8이 내 소매를 잡아끌었다.
“벌써 50분이야.”
우리는 급하게 체육관을 빠져나왔다. 올라왔던 산책로를 그대로 내려가 수영장으로 향했다. 8과 나는 역시나 2시 자유수영에 지각을 했다. 어떻게든, 결국 늦고야 마는구나 우리는. 하지만 이토록 의미 있는 산책은 다시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차가운 물의 감각이 온몸을 깨웠다. 얼굴을 물속에 푹 담그고, 다리를 살랑살랑 저어 물을 밀고, 앞으로 나가 보았다. 팔을 돌리고, 음 - 파.
소음이 점점 잠잠해지는 물속에서 나는 다만 물에 닿는 온몸의 감각에 집중했다. 문득 휠체어를 탄 탁구 선수의 경기가 떠오른다. 비장애인이 운동에 닿는 거리보다 몇 배는 굽이굽이 험한 길을 헤매고 돌아 운동을 마주해야 했을 그들의 역사를 알아야 했다. 더 듣고, 보아야 했다.
수영을 다 끝내고 바깥으로 나왔을 때 저 산책로 끝의 체육관에서는 여전히 트로트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경기는 계속되었고,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졌겠지만 그런 결과는 다 중요하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산책로를 향해 팔을 뻗었다.
“갈래?”
8과 나는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동시에 묻고,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