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게 맛없는 파스타를 저녁으로 먹었습니다.
미소된장과 간장이 들어간 파스타인데, 레시피대로 만들면 맛있어야만 하는데. 면은 불었고, 간은 싱겁고.
아무래도 욕심이 과해 파스타면을 지나치게 많이 삶은 모양입니다.
그걸 꾸역꾸역 먹는데, 먹으면서 생각 없이 이웃들의 블로그 글을 보다가 순간,
정말 보기 싫은 이름을 보아 버렸습니다.
가뜩이나 목이 턱턱 막히는 파스타를 먹고 있었는데. 도무지 삼킬 수가 없어 면을 약간 남겼습니다. 음식물쓰레기가 나오는 것을 다른 무엇보다 싫어하지만 오늘은 여기서 그만 먹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릇을 싱크대에 던져두고, 남은 파스타면 위에 물을 후두둑 뿌리고, 다시 식탁에 앉습니다. 그리고 울기 시작했는데, 나는 이렇게 울어 버리는 연약한 내가 정말 짜증나고, 싫어서 이왕 울 거 지금 다 울어 버리자고 한 30분은 울다가 말짱해졌습니다.
사려 깊었던 사람, 식당에 함께 가면 물컵에 물을 반만 따라줄지, 꽉 채워 따라줄지 조심스럽게 묻던 사람, 수저를 내 앞에 놓는 방향마저 신경 쓰던 사람. 분명, 나를 되게 좋아하던 사람. 그런 사람이 지금은 나에게 전혀 사려 깊지 않다는 사실이 점점 더 선명해집니다.
나는 못나지고 있습니다. 실시간으로.
나는 똑같은 나인데 내 머릿속에서 진행되는 생각들로, 그 생각을 내가 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못생기게 일그러지고, 썩은내가 나고, 그걸 모두에게 들켜 버릴 것만 같습니다.
우선 산책을 나가기로 합니다. 못생겨진 몸은 집에 두고 떠나는 산책길. 현관문을 살짝 열었는데 훅, 눅눅한 바람이 집안으로 들이닥칩니다.
바람은 한순간에 내 몸 속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갑니다. 나는 내 몸에 새로 기거하기로 한, 이를테면 신입 입주자를 환영해 줍니다. 그가 이렇게 멀리까지 떠밀려온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믿습니다?
요즘은 사이비 포교를 손금 봐주고, 사주 풀이 해가며 하던데. 믿음이라는 게 오락화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믿음’, ‘이해’, ‘사랑’ 이런 단어들이 다 같이 가벼워지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우리는 매일 마치 게임 아이템을 수집하듯이 가장 좋은 것에 이르려고 하는지.
나는 오늘도 믿음, 이해, 사랑에 조금씩만 더 박해지기로 다짐합니다.
“사람을 미워하지 마.”
벌써 몸속 방 하나를 차지하고 앉은 바람은 말합니다.
“그럼?”
“더럽게 맛없는 된장간장파스타를 미워해.”
나는 나의 더럽게 맛없는 된장간장파스타도 맛있게 먹어주는 친구들이 보고 싶습니다. 그 맛도 없는 것을 “끝장나게 맛있다”며 바닥까지 박박 긁어 먹어주는, 그러다 누군가 “실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면 다 같이 기침처럼 웃음을 터뜨리고 마는. 나의 호의적인 사람들.
그거 알아? 너에겐 호의적인 사람들이 있어. 그걸 믿지는 않더라도 기억하도록 해.
이건 바람의 목소리는 아니고, 바람 이전에 나의 몸에 기거하고 있던 풀잎의 목소리. 처음 내 몸속 방에 들어왔을 때 흙색이었던 풀잎은 점점 싱그러워지더니 초록과 비슷한 색을 띄게 되었고, 이제 광합성을 위해 몸 밖으로 떠나기로 한다.
“잘 가.”
풀잎은 상큼하게 폴짝, 내 몸 밖으로 뛰어나갑니다. 점점 나아지는 것. 회복되는 것. 그것들이 내 몸 안에 살고 있습니다.
드디어 짧은 산책에서 돌아온 나는, 내 못생겨진 몸을 객관적으로 바라봅니다. 아무래도 빨래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내일 아침 세탁기에 돌리고, 물기가 잘 마르도록 창문에 걸어두면, 지독한 썩은내가 좀 줄어들 것이라고.
나는 몸을 입지 않은 채로 침대에 눕습니다. 가볍고, 자유로운 기분. 몸속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살고 있어 언제나 소란하고, 복잡했습니다.
나는 침실 조명을 끄고, 창문을 꽉 닫습니다. 억지로 눈을 감아 봅니다.
이제 아무도 믿지 않겠다는 다짐보다는,
내일 꼭 빨래를 하겠다는 다짐을 품고,
그렇게 잠에 들기로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