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물살을 가르며 헤엄을 치다가 수영장 바닥에 떨어져 있는 다리 10개 달린 커다란 벌레를 보았습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물 밖으로 걸어 나와 안전요원에게 다가갑니다.
“저기 벌레가 있어요.”
그는 내가 손가락을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너무 느리게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습니다. 지금 나만 마음이 급한 거야? 나는 저 벌레가 사람들의 몸을 마비시키는 독성을 갖고 있다는 상상을 하며 순간 섬뜩해졌습니다. 물 속에 떠 있는 사람들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평화로웠고, 이 공간 안에서 나만 진실을 알게 된 기분이었습니다.
수영을 하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자주 물을 먹게 되곤 했습니다. 수영 선생님은 자신이 20년 동안 수영물을 100L는 먹어왔으나 이렇게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며 괜찮다고 첫 수업에서 말했던가요.
안전요원은 드디어 스태프 룸에서 손잡이가 기다란 채반 같은 것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나는 그 옆에 가만히 서 있을 수 없으므로(모두의 시선을 끌게 될 거니까) 다시 수영장 스타트 포인트로 걸어갑니다. 안전요원은 수영장 바닥을 채반으로 휘적거리다가 벌레 잡기를 실패했는지 다시 스태프 룸으로 들어갑니다.
수영 선생님은 수영장 중간에 서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출발해 이쪽으로 오라는 의미. 아 세상에 그 근처에 벌레가 있는데, 일은 해결되지 않았는데. 나는 가야합니다. 선생님에게 큰 소리로 “저기 벌레가 있어요” 말한다면 다른 강습생들이 전부 알아버릴 테니까. 지금 당신들이 벌레와 함께 수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태프 룸에서는 수영 선생님으로 보이는 이가 안전요원과 함께 걸어 나옵니다. 그가 물 속으로 점프를 했고, 수영모로 벌레를 잡기 위해 시도하는 듯 보였습니다. 나는 눈을 감고, 물 속에 얼굴을 집어 넣습니다.
눈을 감으면 그만이야. 보이지 않으면 아무도 몰라.
선생님은 내 배를 한 손으로 받치고, 내 팔을 등 뒤 멀리까지 보냅니다. 운동을 하면서 나는 늘 궁금합니다. 남들이 보기에 내 자세는 어떨까. 볼품없을까. 허접스러울까. 운동을 할 때는 내가 나를 볼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취약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눈을 감고, 물을 건너가기로 합니다. 벌레는 보이지 않지만 온몸에 소름이 끼칩니다. 나는 숨을 길게 참으며 자유형을 합니다.
보통 초보자들은 한 번 왼팔을 젓고, 그 다음 오른팔을 저을 때 얼굴을 왼팔에 붙이고 파아 숨을 뱉곤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파아 숨을 쉬는 과정에서 귀에 물이 너무 들어와 괴롭습니다. 따라서 나는 남들보다 두 배 더 숨을 참고 있다가 왼팔, 오른팔, 왼팔, 오른팔, 파아 하기로 합니다.
물 속에서는 숨을 쉬는 일에 가장 절실하고, 팔과 다리를 굴러 앞으로 더 빨리 나아가지 않으면 나는 더 오래 숨을 참아야 합니다. 숨을 참는 일도 부자연스러운데 눈까지 감으니 금방이라도 세계가 멸망할 것처럼 긴박한 효과음이 흐릅니다.
벌레는 잡혔을까?
저 앞에 있는 수영 선생님은 수모를 바깥으로 던집니다. 드디어 잡힌 모양이지. 나는 방금까지 벌레가 있던 그곳으로 가고 싶지 않아 반대쪽 레인으로 몸을 돌려 헤엄을 칩니다.
재밌는 점은 벌레를 발견한 뒤 나의 행동입니다. 물 안에서는 여기와 거기가 그닥 다르지 않습니다. 저기에 벌레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물은 오염되었으므로 어디든 안전하지 않긴 마찬가지겠죠. 그래서 물속에서 코를 킁 푸는 사람이, 샤워를 하지 않고 수영복을 입는 사람이 무척이나 신경 쓰이는 것인데. 그러고보면 수영장 안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다른 어떤 날보다도 더 꼼꼼히 샤워를 합니다. 몸을 박박 닦은지 5분.
“왜 그렇게 열심이야?”
나와 함께 첫 수영장을 경험하러 온 동행인에게 벌레에 대해서 얘기할 수 없으므로 싱긋 웃고 맙니다. 그녀는 수영이 좋은 운동인 것 같다며, 수영을 한 달 등록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바깥으로 걸어 나옵니다. 벚꽃이 만개한 봄날의 풍경에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동행인은 좋은 차를 향해 걸어가는, 수영 가방을 든 한 남자를 바라보며 말합니다.
“이상해 우린 방금까지 똑같이 맨몸이었는데 누군 명품을 걸치고, 누군 외제차를 몰고 가네.”
여기와 거기.
물 속에선 여기와 거기가 같지만,
물 밖에선 여기와 거기가 많이 다르고,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벌레를 피할 수 없겠지요.
우리는 수영장 락스 물 냄새를 손가락에 달랑달랑 걸고, 벚꽃 나무 아래로 걸어 들어갑니다. 이 아름다운 풍경 속 갑자기 새똥이 날아든다고 해도 우리는 피할 수 없습니다. 육지의 원칙을 배우고 나니 숨쉬기가 약간 곤란해집니다. 마치 물 속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