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 지금 글쓰기 되게 싫어요. 오늘 중간고사 끝나서 왕창 잠이나 자고 싶네요. 고작 한 과목 시험 봐 놓고 막 큰일 한 사람처럼 보상 심리가 생기네요.
방금까지 분명 그랬는데 이렇게 책상에 간신히 앉아 타이핑을 치고 있으니 왜인지 마음이 편안해지고 있어요. 참 신기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저는 해야만 할 일이 주어지면 심장이 벌렁대고, 도망치고 싶어지는데 이 편지를 보내는 일만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일주일 내내 뭘 써야 할까 고민한다거나 편지를 보내야 할 시간이 다가오면 초조해진다거나 그렇지 않아요. 이 공간과 이 공간에서 글쓰기가 저에게 점점 편해져서 그런 것 같아요.
며칠 전에 이 편지의 독자 한 분이 제 메일을 ‘수신거부’ 눌렀다는 걸 알게 됐어요. 지금까지 수신거부 당한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마음이 아팠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저의 중심 생각은 “쟤 나 싫어하네”인데요, 10대 때에는 그 생각 때문에 사람들에게 더 다가갔다면, 20대인 지금은 그 생각 때문에 사람들과 점점 더 멀어지게 됐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죠.
사람들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이 실제가 되어 눈에 보이면 견디지 못해 하고요.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쟤 나 싫어하네”를 속으로 남발합니다. 그래도 꼭 사람들이 싫어할 만한 행동을 계속합니다.
1명의 ‘수신거부’를 확인하고 저는 조금 히스테릭해져서는 ‘차단’을 누른 그 사람이 누구인지, 도대체 왜 그 버튼을 누른 건지 혼자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지요. 정답은 당연히 없었지만.
익명의 그는 최근에 제 편지를 구독했다가 두 편의 편지를 받아 보았는데 두 번째 편지를 세 번이나 열어보고는 ‘차단’을 눌렀답니다. 저는 그가 마지막으로 읽은 그 글을 여러 번 반복해 읽고, 이 글의 어떤 부분이 그를 불편하게 했을지 생각했어요.
자기가 만든 것들 앞에서 어떻게 사람이 쿨해질까요. 그래서 뭔가를 창작할 때마다 무섭고, 한편으로는 희열을 느껴요. “쟤 싫어”든 “쟤 좋아”든 누군가의 쟤가 된다는 거, 그건 그 자체로 참 흥분되는 일이니까요.
저는 지금까지 두 권의 책을 만들어 왔는데 첫 번째 책을 만든 이후에도, 두 번째 책을 만든 이후에도 회복 기간이 오래 걸렸답니다. 책을 다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책이 팔리고, 사람들이 그것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저는 기가 쭉 빠져서 한 반년은 아무런 글도 쓰기 어려운 몸이 돼요. 이것도 다 체력의 문제일까요?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정도로 심해서 아무도 나를 볼 수 없는 곳에 몰래 숨어 있고 싶어요. 아무래도 전업 작가는 못 되겠지요.
네. 그래서 이 글의 결론은 제 회복기가 끝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참 좋은 소식이 아닌가요. 드디어 쓰고 싶은 글이 생겼는데 이것들을 엮어 책을 낼 계획은 없습니다. 그래도 이 편지에는 일주일에 한 편씩 같은 테마의 글을 연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네요. 제가 쓰고 싶은 글의 테마는 왕 큰 가슴입니다. 저는 24년을 왕 큰 가슴 달고 살아왔고, 이 가슴에 엮인 온갖 슬픔과 기쁨 데이터가 쌓여 있는데 그냥 축 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성적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여성의 가슴은 지난 N년간 한국사회의 탈코 열풍에 발맞춰 신체의 일부로서 그 자체로 인정받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세상이 가슴님을 친히 인정하시겠다는데, 나는! 나만! 왜 내 가슴을 인정 못하고 있을까요. 노브라는커녕 가슴 작아 보이게 일부러 작은 속옷만 입는 내 앞에서 스스럼없이 젖꼭지 노출하고 흰 티 입는 여성들이 활보할 때 어찌나 극심한 박탈감을 느꼈는지요. 그녀들의 당당한 가슴 앞에서 저는 더 처량해지기만 합니다. 작아지고 싶다. 잘라내고 싶다. 큰 가슴 인간은 당당해지는데 몇 배나 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예고가 길었어요. 쓸 말이 참 많네요. 받는이 여러분 각자의 가슴 이야기도 듣고 싶고요. 모두 자기 가슴과 어떤 기묘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궁금해요. 사람들이랑 가슴 인터뷰하고 싶다.
오늘 글은 여기까지 할래요. 마음이 지쳤는지 폭식이 하고 싶어요. 폭식이 하고 싶을 땐 일단 달리기를 하러 나가자고 스스로 약속해서 밤이 늦었지만 그 약속을 지켜보려고요. 과거의 폭식증 환자는(어쩌면 진행형) 폭식하고 싶다는, 그럴 것 같다는 감각만큼 두려운 게 없네요. 저를 폭식 욕구로부터 구해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여러분의 짧은 답장? 하하.
외로운 밤을 답장으로 달래주시기를. 다소 불안정한 오늘의 저를 받아주시기를.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