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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유독 젊은 세대의 도파민 중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는데, 출처는 제각각이지만도파민 중독이라는 단어에 언제나 귀를 쫑긋하게 되는 것은 단순히 제가 찔려서겠죠?
누군가 도파민 디톡스를 하는 중이라던데 요즘의 제게도 필요한 것 같아요.
한편 무언가를 줄이면 ‘어떤’ 사람이 된다는 것만큼 결과론적이며 획일적이고 확신에 찬 기획들이 다 지겹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당을 줄이고, 칼로리를 줄이고, 일을 줄이고, 생각을 줄이고, 짐을 줄이고, 카페인을 줄이고. 아… 이런 것들이 정말 한 사람을 바꿔 놓을 수 있을까요?
일시적이고, 즉각적인 본 프로젝트 앞에서 우리는 대체로 무너질 테고 그럼 의지박약이라며 자기 자신을 탓하는데 에너지를 몰아 쓸 것이고, 그 스트레스로 자신이 줄였던 뭔가(도파민, 당, 칼로리 등등)를 다시 늘리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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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주일, 저는 식이조절을 했습니다. 2년 만에 처음 하는 식이조절이네요. 딱 일주일, 얼굴에 붓기만 빼려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식이조절’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박히자마자 뇌가 저를 함부로 조종하기 시작했습니다.
폭식 욕구가 치솟을 때마다 불안했고, 그러다 아무거나 먹었고, 좌절했고, 금방이라도 다시 폭식증이 도질까 봐 두려웠습니다. 폭식을 지속했던 그때처럼 홀린 듯 먹방을 찾아봤고, 하루의 많은 시간 음식 생각을 했지요. 병의 발현 양상이 비슷하면 비슷할수록 무서웠습니다. 치유되는 병은 없는 것 같아요. 가끔은 내가 가진 많은 질환들이 완치되었다고 믿지만, 어떤 상황으로 저를 밀어 넣으면 병은 다시 도집니다.
아픈 뒤로 근육이 생기긴 한 건지, 강해졌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확인할 때마다 슬퍼집니다. 그래도 요즘의 저에겐 달리기가 있었고, ‘달리면 되니까’라는 하나의 불안 방지턱이 생겨 조금은 수월하게 지나갔네요.
중요한 일정은 끝났고, 저는 크림빵을 입안에 밀어 넣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이제 끝났다. 앞으로 나를 억압하는 일은 절대절대 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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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이 짧은 세 단락의 글은 전부 이어집니다. 서론, 본론, 결론 없는, 하지만 내 안에서 일어난 많은 일들이 이런 식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재미있네요.
저는 지난 두 달간 강남에 있는 영어회화학원에 다녔습니다. 그리고 제 하루 스케줄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아침 7시 기상.
1시간 30분 걸려 학교 도착.
9시부터 12시까지 대학 수업 듣기
(열라 뛰어야 학원 지각 안 함. 회기역에서 출발하는 그놈의 52분 열차를 타기 위해 2달 내내 미친 듯이 달려야 했음. 열차 세 번 갈아타서 강남 도착. 밥은 김밥 등으로 대충 때움)
1시부터 6시까지 회화 학원에서 수업 듣기
1시간 30분 걸려 집 도착(지옥철 이슈)
이러했습니다. 하루 이동 시간이 4시간이 넘어가는 극악의 스케줄이었는데 이걸 꾸역꾸역 두 달 지속했네요. 박수를 보냅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저는 이 짓을 두 달 더 할 계획이었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영어 회화 공부도 하고 싶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오늘 수업을 들으면서 학원을 그만 다니기로 결정했습니다. 갑자기 오늘, 너무나도 충동적으로 내린 결정이었고, 미리 냈던 학원비를 다 환불받은 뒤 경쾌하게 학원을 걸어 나왔네요.
저는 지치지 않았습니다. 두 달의 기간이 힘들긴 했지만 제가 통제할 수 있을 정도의 피곤함이었고, 저는 괜찮았어요. 하지만 이 힘든 스케줄을 감당하면서까지 들어야 할 학원 수업일까? 생각하니 그렇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영어 학원의 원장 선생은 1시간 수업 중 딴소리를 40분 가까이할 때도 있었고, 똑같은 말을 네 번이나 수업에서 반복하기도 했죠. 대부분 한국의 영어 공교육과 젊은 세대의 답 없음에 대한 꼰대적 망언이었고, 저는 더 이상 그의 이러한 모습을 두 눈 뜨고 지켜볼 수 없다고 생각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학원을 다녔던 이유는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하루를 통제할 수 있을까, 내 의지로 자리에 앉아 공부를 할 수 있을까, 라는 불안. 몰랐는데 저는 저에 대한 믿음이 많이 부족한 사람이더라고요. 학원에라도 오지 않으면 나는 공부를 하지 않을 거야, 나는 내 하루를 온전히 내 힘으로 꾸리지 못할 거야, 라는 강력한 부정적 생각이 저를 계속 이 (망할) 학원에 머물게 했습니다.
두 달 동안 영어를 조금 더 유창하게 벙긋거리는 입을 갖게 된 대신, 저는 신체적, 정신적, 시간적 자유를 반납했지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어느새 남이 시키는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이건 내가 원하는 영어 공부도, 내가 원하는 하루도 아니었는데.
나는 내가 원할 때 언제든 내가 원하는 카페에서 공부하고 싶었고, 달리고 싶을 때 어디든 나가 뛰고 싶었고, 천천히 걷고 싶었고, 멍도 때리고 싶었어요. 이런 모든 것을 반납하고 얻은 것이 고작 값싸고 허무한 영어 실력이라니. 학원 선생은 영어를 잘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 양 주입시키곤 했지요. 뭐 어쩌면 맞는 말일지 모르죠. 하지만 당신의 그 잡담 가득한 수업을 듣는 것이 영어를 잘하기 위한 지름길이라는 망언은 제발 삼가주시기를.
네. 이번 주에는 일상의 모양에 대해 생각했어요. 나의 하루를 조각내 그 결을 만져보았고, 변주를 주었고, 그래서 내일이 조금은 더 기대됩니다. 생각보다 큰 결단이 필요했지만 후회 없이 제 선택을 마주해 볼게요. 도파민 디톡스도, 영어 공부도 다 잘 안될지 모르지요. 안 될 겁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하는 과정에서 제 일상이 단정했으면 좋겠어요. 흐물흐물 편안했으면 좋겠어요. 마음이 다치거나 아프지 않게 자꾸 그 모양을 들여다봐 주는 사람은 다름아닌 나여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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