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글모임에서 이런 글제를 받았어요.
<증오하는 것을 선물로 받은 크리스마스>
글을 쓰면서 미리 크리스마스 기분을 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이 소설을 읽어준 한 글동무가 "이거 진짜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글이었어"라고 극찬해주었고,
저는 기뻐서 그날 크리스마스 꿈을 꾸었네요.
독자님들께 작은 미리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길 바라며 보냅니다.
아! 그리고 연말 기념 재밌는 이벤트가 있으니 편지 끝까지 읽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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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른 아침, 초인종 소리에 눈을 떴다. 엄마가 보내주겠다 약속했던 영월 꿀 딸기가 도착했나, 나는 끈적이는 몸을 일으켜 현관문으로 향했다. 문 앞에는 택배 기사 아저씨가 서 있었다. “사인요..” 내용물이 국가 기밀 문서라도 되는지 나는 사인까지 한 뒤에야 택배를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은 악세사리 정도가 들어갈 법한 아주 작은 박스였다.
박스 문을 열자 뽁뽁이에 꼼꼼히 싼 빨간 상자가 나왔다. 뽁뽁이를 뜯고, 빨간 상자를 연 뒤에야 나는 선물의 정체를 확인했다. 그것은 길게 자란 손톱. 손톱은 소중하게 포장되어 있어서 진심 같았다. 그러니까 진짜 이걸 선물이랍시고… 다 진심이었다. 나는 손톱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봤다. 반달 모양의 반투명한 그것은 인조손톱이 아니요, 진짜 인간의 것이었다. 인간의 몸에서 나온 손톱.
그 동글하고, 자그마하지만 예쁜 구석이 있는 손톱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그 낯익은 모양에 당혹스러웠다. 아, 이것은 분명. 그러니까 분명 어딘가에서 보았던 형태인데. 나는 무의식중에 상자에서 나온 그 손톱을 내 왼쪽 검지손가락 위에 올려보았다. 놀랍도록 딱 맞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문득 나는 어떤 목소리를 기억해냈다.
“나는 손톱이 가장 예뻐.”
고개를 돌렸을 때 손톱은 이미 작고, 마른 성인 여자아이로 변해 있었다. 그것은 나. 5년 전의 내 모습이었다. 손톱은, 아니 그 애는 나를 보자마자 화들짝 놀란 채 화장실로 들어갔다. 손톱은 시간이 한참 흐른 뒤 화장실 밖으로 걸어 나왔다.
“진짜 죽으려고 했던 건 아냐. 그냥…”
손톱은 울었는지 눈이 벌겋게 부어 있었다. 아무래도 자기가 죽은 줄 아는 모양이지. 나는 5년 전 크리스마스를 기억해내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날 나는 죽으려 했고, 잘 되지 않았다. 왜 하필 크리스마스였냐 하면 그날 케이크 두 판과 초코빵 다섯 개, 과자 몇 봉지를 뜯어 먹고 잠들었기 때문이다. 칼로리, 그것이 죽고 싶은 이유의 전부였다.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입을 초록과 빨강이 섞인 미니 원피스를 위해 일주일을 굶었다. 스무 살의 끝에 열리는 파티에서 아름다운 건 의무 같은 거였고, 하지만 되돌아보니 비단 크리스마스뿐 아니라 스무 살 전체를 그 의무에 사로잡혀 지냈던 것 같다. 어린 여자애는 기필코 아름다워야 해. 그것은 무기이고, 의무야. 칼로리를 줄이는 것만이 삶의 활력이요, 마른 몸은 삶의 이유였다.
나는 그 파티를 위해 30만 원짜리 원피스와 100만 원짜리 코트를 샀다. 당일에는 미용실에 가서 머리도 하고, 메이크업도 받기 위해 30만 원을 더 저금해두었다. 그런데 그 하루를 참지 못하고 폭식증이 도졌다. 끝도 없이 먹었는데 토하지도 못하고 잠들었다. 역시나 온몸이 부은 채 눈을 떴다. 팅팅 부은 눈두덩이는 가관이었다. 지금부터 밤늦게까지 최선을 다해 러닝머신 위를 달려도 붓기는 가라앉지 않겠지. 나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가지 못할 것이고, 내 몸 하나 어쩌지 못하는 나는 평생 아무것도 못 할 것이라며 자괴했다. 나는 나를 없애 버리고 싶었다.
나는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과거의 기억을 5초도 안 되는 시간동안 복기하며 내 앞의 저 손톱이 증오스럽고, 안쓰러웠다. 그녀는 내가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던 초라하고, 멍청한 바로 그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집에 데려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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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손톱에게 내가 가장 아끼는 코트를 입혀주었다. 손톱은 지금의 나보다 옷을 좋아했고, 꾸미는데 돈을 많이 썼다. 아름다우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그러니까 손톱이 좋아할 만한 코트를 선물로 주고 싶었다. 손톱과 나는 나란히 마스크를 쓰고, 집 밖으로 나섰다. 거울에 비친 우리 둘은 헤어스타일도, 체형도 많이 달라서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손톱의 긴 생머리를 손으로 쓸어 보았다. 태생이 악성 곱슬머리인 내가 이 생머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쏟았던가. 나는 그것들은 참 부질없다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함께 버스를 탔다. 그러고 보니 본가에 못 간지도 벌써 석 달이 되었다. 손톱은 버스 창문에 기대 창문 너머로 스쳐 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손톱은 지금의 내가 어때 보일까. 마음에 들까. 지금의 나는 5년 전을 암흑기라고 단순히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자랐다. 하지만 나를 미워하는 건 여전하다. 종종 아주 사소한 이유로 나를 없애 버리고 싶기도 하다. 그래, 그러고 보면 5년이나 흘렀지만 나는 나쁜 것들을 그대로 끌어안은 채 살고 있다.
“넌 내가 어때 보여?”
나는 손톱에게 물었다.
“어른. 어른 같아.”
그뿐이었다. 손톱은 다시 입을 다물고, 바깥의 풍경에 집중했다. 나는 손톱의 앉은 자세와 옆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 애는 내 기억 속에서 보다 생기가 있었고, 불안하거나 위태로워 보이지 않았다. 그런 것은 필히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어린 나는 그것을 모두에게 들켜 버릴 만큼 표가 났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혐오감이란, 사소한 태도에서 묻어나 다 들키는 법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 애는 짐짓 평화로워 보이기도 했다.
지난 몇 년 간 그 시절로는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의 바로 그 시절을 살고 있는 손톱은 생각보다 나와 닮았다. 마른 몸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것들이. 어깨를 쫙 편 채 평온하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모양새 하며, 삐딱하게 앉아 옆모습만 보이며 세상 모든 것들로부터 회피하는 태도 하며.
“무슨 일을 해?”
508번 버스에서 110-5번 버스로 갈아탔을 때 손톱이 내게 물었다.
“잡지사에서 일해.”
손톱은 무관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잡지사에서 에디터 보조로 일을 시작했다. 월급은 짠데 선배들은 명품을 걸치고 다녔다. 스멀스멀 돈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예쁜 것보다 최고는 돈. 부유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다. 비싼 것을 사서, 몸에 걸치기 위해 월급의 대부분을 탕진했다. 카드빚도 차곡차곡 쌓여 갔다.
이 모든 것을 손톱에게 말할 수 없다. 기적은 없을 미래에 대해 말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손톱에게 이것만은 꼭 말해주고 싶었다.
“너는 곧 병을 극복해. 그리고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
내 말에 손톱은 고개를 돌렸다. 그 애는 위에서 아래로 나는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극복… 나는 식이장애를 극복하는 데 일 년이 걸렸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극복이었을까. 나는 이제 삼시세끼를 챙겨 먹고, 그러니까 병적인 폭식을 하지 않고, 일주일에 한 번은 운동을 나간다. 하지만 긴 시간 공복을 견디면 느끼는 허기짐, 끝내 감추지 못하고 폭발적으로 터뜨리는 비이성적 욕망 표현은 여전했다.
영혼이 다 빠져나간 인간의 말라버린 몸뚱이를 질질 끌고, 퇴근 길 지하철을 탈 때 나는 내가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머리를 두어 대 때려보곤 했다. 밤늦게 침대로 기어들어 와 끽끽 기괴한 소리를 내며 울다가 건물이 떠나가라 고함을 질렀다. 아침이 되면 머리를 감고, 예쁜 옷을 챙겨 입고, 화장을 하고, 비타민을 입안에 털어 넣은 뒤, 집을 나섰다. 지하철에서 내 발을 밟는 사람에게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는 친절을 보여줬고, 회사에서는 열정과 사랑이 넘치는 인간을 연기하거나 실천했다. 그것은 어렵거나 아쉬운 일은 아니었다. 스물다섯의 나는 이것이 인생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덕에 조금은 괜찮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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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급정거하며 멈췄을 때 나는 눈을 떴다. 손톱도 푹 잠들었는지 비몽사몽 깨어났다. 종점이었다. 종점에서 15분만 걸으면 우리 집이 나온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벌써 해가 지고, 깜깜했다. 크리스마스가 저물고 있었다. 곱창집과 횟집, 햄버거집이 차례대로 지나갔고, 그곳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시골 번화가에서 가족들과 소소하게 밥을 먹으며 보내는 크리스마스, 그것만으로 안 되는 걸까. 꼭 서울로 가서 일 년간 갈고 닦은 아름다움을 뽐내야만 스물의 미덕인 걸까. 나는 스물다섯의 내가 보내려 했던 크리스마스를 떠올렸다. 신세계 백화점에 가서 시계 하나를 사고, 에스프레소 바에서 커피 몇 잔을 마시고, 예술 영화관에서 영화 한 편을 본 뒤, 차곡차곡 찍은 감성 사진과 함께 여자 혼자 보내는 크리스마스의 완벽함과 낭만에 대해 읊조리는 게시글 하나를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 #여자혼자#메리클쓰마스. 그래 너 말야, 스물다섯의 크리스마스 그냥 대충 이렇게라도 괜찮았잖아.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손톱은 조급한 얼굴을 하고, 몇 시냐고 물었다. 시간은 5시, 손톱은 급하게 챙겨 나가면 파티에 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죽고 싶었던 손톱은 어찌저찌 살아나 다시 죽고 싶어지는 공간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곳에 가는 건 자살행위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손톱은 그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자신이 못생겼다는 생각을 수 천 번 하느라 불행할 것이고, 집으로 돌아와 일주일 내내 굶다가 응급실에 실려가 영양실조 진단을 받을 것이다. 나는 다 너무 잘 알아서, 벌써부터 내 눈 앞의 손톱이 견딜 수 없이 안쓰러웠다.
“제발 가지마.”
반사적으로 목소리가 툭 튀어나왔다. 애원하고 싶었다. 제발 그러지마, 너를 학대하지 마.
“나는 갈 거예요.
다녀와서 다 청산하려고 했거든요. 나를 부끄러워하는 거 이제 그만하려고.”
손톱은 확고했다. 일순 나는 놀랐다. 스물의 내가 무언가를 자꾸만 다짐하던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무너지더라도 자꾸 다짐하기. 사람들에게 친절할 것, 남 욕 하지 말 것, 아름다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잣대는 나에게만 향할 것, 완벽함을 갈구하지 말 것. 나는 진지했다. 그런 다짐 앞에서 스물의 나는 살아가고 있었다. 죽고 싶거나 울고 싶을 때도 다시 한번 다짐하고, 무너지고, 살아내고 있었다. 그것을 기억하고 나니 지금의 내가 조금은 대견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빨리 스물다섯이 되고 싶어요. 잘은 몰라도 꽤 친절해 보여요.”
손톱은 빠른 걸음으로 걸어 나를 앞질렀다. 그리고 내 쪽으로 고래를 돌린 채 크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리고 손톱은 휙, 경쾌하게 집으로 들어갔다. 손톱은 앞으로 여러 번 죽을 만큼 괴로운 순간을 거치겠지. 그리고 몇 번의 크리스마스를 지나 지금의 내가 된다. 고작 내가 아니라 이런 내가 된다. 그러니까 손톱은 나에게 첫 봄 인사를 건네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내년을 맞는 나를 위한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선물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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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옷을 여미고, 종점으로 빠르게 걸었다.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집에 도착하면 8시,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괜찮은 시간이었다. 에어프라이어로 쿠키를 굽거나 영화 한 편을 봐도 좋겠다. 손톱이 스물의 시간을 청산하는 동안 나는 손톱에게 조금 늦은 크리스마스 편지를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휴대폰 메모장을 켰다 끄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 비로소 몇 문장을 적을 수 있었다.
나는 너를 나약하다고 미워했는데
알고 보니 나는 언제나 네가 될 수 있는 사람이었어
나는 극복하거나 나아질 수 없는, 그냥 이런 애니까
그걸 이제는 받아들여 볼까 해.
메리 크리스마스!
버스에는 화려한 파티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탔다가 어떤 정류장에서 우르르 함께 내렸다. 갓 스무 살이 되어 보이는 젊은이들, 기를 쓰고 특별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눈두덩이 위에 반짝이를 올린 몸동작. 그것은 같잖거나 의미 없어 보이지 않았다. 그 자체로 아름다워 웃음이 났다. 다음 정류장, 나는 버스에서 내렸다. 눈이 오지도 않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지도 못했지만, 만족이다. 이것은 얼핏 크리스마스의 기적처럼 보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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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니까 독자님들께 조금 다른 편지를 보내고 싶어졌어요.
저에게 재밌는 글제를 던져주시면 그 글제로 편지를 쓸게요.
글제 선정 기준은 첫째도 재미, 둘째도 재미.
기괴하거나 발칙한 것도 다 좋아요.
한 편, 혹은 두 편의 편지를 이렇게 써볼까 해요.
'답장 남기기' 링크에서 글제 공모를 해주세요. 글제와 이 글제를 보내는 간략한 이유, 그리고 살편살지에 공모자님의 닉네임 혹은 이름을 밝혀도 되는지 함께 알려주세요.
글제가 선정되신 글제 공모자 분께는 우편으로 깜짝 선물이 발송될 예정이니 전화번호, 주소 등도 기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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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소설을 쓸 모임원을 모집하기 위해 앞 광고를 삽입해봅니다.
대학 소설 학회에서 3년이나 함께 글을 써온 소민과,
우리 대학 밖에서도 꼭 글을 쓰자, 등단하거나 등산하거나 뭐라도 하자,
말장난하던 것을 현실로 만들고 싶어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주에 한 번 모여
소설 얘기를 한참 하거나 에라 모르겠다 소셜하거나.
합평하다 에라 모르겠다 농담 따먹기.
그 어딘가에서 갈팡질팡 헤매어볼 예정입니다.
모임 장소와 시간은 추후 모임원 분들과 논의합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관심 있는 분은 아래 구글폼을 채워주세요.
좋은 인연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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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2.13
겨울 코트를 한 벌 구비한
살살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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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 글과 그림을 담아 편지합니다.
답장 편지는 언제나 감사히 읽겠습니다.
[살편살지] 과거의 편지도 읽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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