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릴라
곽은 그날 밤 아르기닌을 먹었다. 그리고 여느 날처럼 상봉역 앞에 있는 피트니스 센터에 운동을 하러 집을 나섰다. 그게 내가 본 곽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다음날 곽은 고릴라가 되어 돌아왔다. 아르기닌을 먹고, 운동을 하러 나갔을 뿐이었던 그가.
곽이 운동을 시작한 이유는 순전히 내 악담 때문이었다. “그게 다 네가 운동을 안 해서 그래”라는 말로 곽의 고통을 일축하곤 했으니까. 곽에게 그렇게 악질적으로 군 이유는 따로 없었다. 곽에게 마음이 떴고, 마음은 떴지만 곽과 함께 2년째 살고 있는 이 좋은 집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계속 살고 싶었고, 한편 곽말고, 다른 사람과 데이트를 하고 싶기도 했다.
곽은 고층 건물 청소 노동자로 일했다. 그것은 전문직이라기보다는 일용직이었고, 비성수기에는 다른 몸 쓰는 일들도 함께 하며 돈을 모았다.
곽은 어느날부터인가 건물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게 되었다. 발밑의 공포스런 풍경이 야기한 미칠듯한 긴장감이 그를 예민하게 곤두서게 했고, 그 덕분에 요상한 초능력이 생긴 것이다. 회사 컴퓨터 앞에 앉아 사람들은 그를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한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안락한 내부에 앉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그것이 곽의 착각일 거라고 말했다.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내부는 생각보다 끔찍하단다. 네가 회사 생활을 안 해봐서 모르나본데 사람들이랑 다같이 내부에 앉아 있는 건 너의 두려움에 비견할 만큼 두려운 일이란다. 회사 안에 있는 사람들은 너를 부러워할 거야. 너 혼자 혼자니까. 넌 혼자서 하늘을 걷고 있잖아.
곽은 고개를 저었다. 한번은 곽이 청소하던 고층 건물 엘리베이터를 탄 일이 있었다. 곽은 그날에 대해 내게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다. 내가 깨닫길 바란다는 식으로. 내 안의 뒤틀린 편견을 어떻게든 들춰내겠다는 요량으로.
엘리베이터 안에서 막 시끄럽게 떠들던 사람들이 내가 타니까 일순간 조용해졌어. 왜, 왜 일까. 그 순간 나는 침입자였어. 무슨 말인지 아니? 안락한 세계를 파고든 거야. 내 모습과 냄새와 내 모든 것들이. 그날 내 몸에서 무슨 냄새가 났을까. 그걸 생각하면 너무 끔찍해 못 견딜 정도로.
그 무렵 나는 이직을 했다. 증명해야 할 수많은 것들 앞에서 나는 말라갔고, 그의 말은 들어줄 여력이 없어 그냥 이렇게 일축했다.“그게 다 네가 운동을 안 해서 마음이 시끄러워서 그래.”
그래서 곽은 아르기닌을 먹고, 운동을 했다. 매일 매일 피트니스 센터에 나갔다. 이것은 다 지난 이야기다. 적어도 나에게는.
곽은 사람 말을 했다. 고릴라가 사람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이상하고, 신기했다.
안녕.
안녕.
나는 처음부터 내가 이렇게 될 거란 걸 알았어.
그게 무슨 말이야?
아르기닌에는 부작용이 있거든.
근데 왜 도대체 왜 이걸 먹었어.
곽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블로그에 “엑스토시아(사)의 아르기닌 부스터 약품을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쓰는 그의 털 난 손을 보는 대신 그의 커다란 젖가슴을 보았다. 그는 수컷 고릴라일까, 암컷 고릴라일까. 곽은 글쓰기를 시작만 하고, 끝을 맺진 않았다. 글을 쓰던 도중 곽은 참을 수 없이 배가 고파졌기 때문이다. 나는 포털 사이트에 ‘고릴라 먹이’를 검색했다.
<고릴라는 채식을 합니다. 버섯, 셀러리, 죽순나무 잎을 주식으로 먹습니다.>
당장 집밖으로 뛰어 나가 대형 마트로 향했다. 셀러리를 잔뜩 구비해두기 위해서였다. 사실은 곽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였다. 나는 고릴라가 된 곽이 두려웠고, 이토록 생경한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곱씹을 수록 내 자신이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다.
왜냐하면 나는, 나는 일 년쯤 전 곽이 나에게 했던 질문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넌 내가 고릴라가 돼도 사랑할 거야?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럼 너를 곽릴라라고 불러야겠구나.
내가 고릴라가 되면, 네 눈물을 닦아주기는 어려울 거야. 그래도 괜찮을까?
그날 나는 영원히 여전히 곽을 사랑하겠다고 하염없이 다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이란 서사는 그런 다짐과 별개로 흘러간다는 자명한 사실을 곽을 만난 뒤 알게 된 건 비극일까, 희극일까.
*
나는 곽릴라를 사랑하기로 하였다. 곽이 고릴라가 된 뒤로 얼핏 우리 사이는 더 좋아졌다. 남들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도 좋은 쪽으로 달라졌다. 곽에게 무척이나 미안해서 그를 사랑하고 싶었다. 그런 다짐은 종종 사랑처럼 보여 나와 우리를 헷갈리게 했다.
한편 곽이 고릴라가 된 뒤로 회사에서 자꾸 바라보게 되는 뒷모습이 있었다. 그는 한 편의 책을 낸 작가였고, 나와 같은 층에서 일을 했다. 그의 책은 감성적인 사진과 감성적인 문장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는 책을 다루는 팟캐스트에 게스트로 나와 책이 2000부도 팔리지 않았다며 한탄했다.
나는 그 팟캐스트를 듣고 그의 정체성에 대해 어렴풋이 읽을 수 있었다. 그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어려운 퀴즈 같지 않았다. 명확하고, 손쉬운 수학 문제 같아 흥미를 잃었다. 책에 담긴 얄팍한 생각 더미들과 그가 정체성에 대해 말하는 역력한 태도, 분명 내 취향이 아닌 모습들이다. 나는 정제된 것들은 어느 순간 다 혐오스러워보이곤 했으므로 그에게도 미약한 증오를 느꼈다. 곽을 처음 보자마자 느낀 애틋함과는 정반대의 감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바라보게 된 건 그의 외모 탓이었다. 잘났다. 여러모로.
나는 회사에서 만나게 되는 몇 안 되는 뭔가 좀 다른 사람들은 다 내 편이라고 생각하게 되곤 했고, 어떤 방식으로든 친구가 되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그에게 한 발 한 발 다가갈 계획을 세웠을 뿐이었다.
나는 그를 회사에서 마주칠 때마다 착실하게 인사를 했다. 사실 그를 한번이라도 더 마주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갖은 애를 써서 그를 마주치면, 뭐라고 말을 걸까 고민하며 늘 인사만 했다. “그 팟캐스트 나오신 그 분…?” “그.. 책 내신 작가님…?” 팬 인척 할까, 그렇게 다가오는 사람들은 지겨울 수 있으니 그냥 편하게 다가갈까. 나는 그와 나의 첫 대화 장면을 매일 매일 아주 많이 생각했다. 그 생각만으로 심장이 뛰고,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는 것 같았다.
*
곽은 침대에 엎드린 채 웅크려 있었다. 잠들었을까. 이제 곽은 점점 인간의 말을 잃어갔다. 우리의 대화는 눈빛으로 이뤄졌다. 나는 고릴라든, 인간이든 아무튼 곽이 우리 집에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곽이 집에 있으면 나는 비밀스러운 사람이 되었다. 곽에게 나는 더없이 비밀스러운 사람이었다. 미지를 마주하는 듯한 곽의 눈빛을 바라보며 느끼는 교만함은 바깥의 내 삶을 안정적으로 유지시켜줬다.
나는 곽 옆에 누워 보았다. 곽에게서는 고릴라의 냄새가 났다. 그의 변해 버린 몸과 냄새가 점점 친근해졌다. 그와 처음 연애를 시작했을 때 그가 손으로 밥을 먹는 모습과 말끝마다 욕을 붙이는 버릇을 이해하게 되었듯이.
다만 그것은 이해와는 조금 다른 차원의 감각이었다. 나는 그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를 안지 않고도 안아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를 쓰다듬는 내 팔에는 동정이 담겨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의 동정은 위태롭지 않았다. 언젠가 깨질 감정이 아니었다. 내 동정에는 평생 지속될지도 모를 단단함이 있었다. 그것이 나를 두렵게 했다. 곽이 나 없이 살 수 없을 거라는 예감말고, 곽과 나를 이어주는 건 무엇일까.
나는 곽의 몸을 뒤에서 껴안고, 그 남자 이야기를 했다. 어차피 곽은 내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할 것 같았다. 곽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에 대한 것뿐이었다. 회사에서 그를 보는 것은 내 평일의 활력이었고, 곽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곽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랐다. 나의 마음을 들려주고 싶었다. 좋아하지도 않지만 그를 한번 안아보고 싶은 마음을. 일단 밥 한번 먹자,로 내 감정을 포장하고 싶은 마음을. 나는 곽보다 그에게 잘 맞는 사람일 거라고 타진하는 마음을. 사실은 곽보다 내가 훨씬 더 나은 사람이라는 걸 매일 생각했던 마음을. 다 알아주길 바랐다. 그리고 이 마음을 전부 다 곽이 이해해주길 바랐다.
날 사랑한다면 그렇게 해, 하고 곽의 사랑을 타진할 수도 있겠다.
*
곽은 인간일 때도 유난히 기다리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 덕에 우리의 연애가 시작되기도 했다. 곽은 고릴라가 된 뒤에도 기다리는 것을 잘했고, 하루 종일 집 안에서 나를 기다렸다. 셀러리 한 박스를 매일 매일 먹으면서. 그에게 다른 욕망은 보이지 않았다. 먹는 것, 그리고 나를 기다리는 것.
나는 나를 기다려준 곽에게 상을 주듯이 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에 대한 나의 지독할 정도로 촘촘한 감정들을. 곽은 나의 다양한 마음을 잘도 받아 먹었다. 곽은 대답 없이 그저 커다랗고, 까칠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런 섬세한 몸동작이라면 내 눈물도 닦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곽에게 영영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숨기고 참았던 이야기를 다 하고 나니 참 별 게 없었다. 곽에게 보여줄 내 마음은 몇 주 사이 동이 났고, 감정의 밑바닥에서 썩은내가 올라왔다. 나에게 남은 것은 없었다. 그러니까 곽이 나를 바라보던 비밀스러운 눈빛도 더는 누릴 수 없었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평일 저녁, 그날도 어김없이 곽의 복슬한 등을 껴안은 채 곽의 온기를 느끼고 있었다. 편안해진 상태로 그에 대해 말했다.
드디어 그 사람이랑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어.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별 거 없는 그냥 사람이고,
너는.
너는 나한테 확실히 조금 다른 사람이잖아.
그 사람이랑 밥을 먹으니까 명확해졌어.
곽, 네가 나한테 너무 필요하단 거. 그런 걸 겪어봐야 아는 내가 너무 멍청해. 그렇지?
곽은 오늘도 대답 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편안하고, 아늑했다. 그의 팔이 길고, 그의 품이 커다래서 다행이다. 고릴라인 곽이 더없이 다행이다.
곽은 한참 뒤 조용히 웅얼거렸다. 들린 듯, 들리지 않아 메아리 같아서 나는 내가 이명을 들은 것인가 잠시 착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내가 사랑하던 내가 그리워 마지 않던 곽의 목소리였다.
이제 나를 보내줘. 어서
*
며칠 전부터 회사 빌딩의 창문 청소가 시작되었다. 노트북에 고개를 처박고 있다가 창문을 때리는 소리가 들리면 고개를 휙 들어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창문을 닦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보려다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혹여나 내 마음이 읽혔을까, 하며. 그리고 한참 생각에 잠겼다. 방금 내 마음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창문 청소한다.>
나는 카톡을 보내 보았다.
<그러네.>
그는 얼마 뒤 답장을 보내왔다.
나는 점심을 먹으면서도 그에게 창문 청소에 대해 물었다. 창문 청소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슨 마음이 드냐고. 그는 창문 청소 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하였다. 그의 마음은 단순명료하였다. 곽이 보고싶어졌다. 주말에는 꼭 곽에게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
곽은 창살에 갇혀 있다. 언제나 그렇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주고 받지 않는다. 사실은 저 네 마리의 고릴라 중에 곽이 누구인지도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저 안에 곽이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창살 앞에 선다.
곽이 우리 집을 떠나던 날을 기억한다. 곽은 여느 날처럼 셀러리를 양껏 먹었고, 우리 집 침대에 똥을 쌌다. 곽의 그것은 내 마음의 배설물이었다. 거기에는 셀러리 조각이 끼어 있어 오묘한 초록빛을 띠었다.
일순 나는 창살에 갇힌 고릴라 한 마리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를 읽고야 말았다. 그것은 다소 충격적인 문장이어서 내가 다시는 그곳을, 곽을 찾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나는 다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