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빛을 손에 쥔 채로 내 자리로 돌아왔다. 노트북을 열고,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광고대행사의 일 년 차 카피라이터는 일이 있거나 없었다. 일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팀에 큰 쓸모는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빈 키노트 화면을 켜놓거나 핀터레스트를 켜놓고, 뭔가를 생각하는 척 정말로 생각을 하거나 딴짓을 했다. 앞과 뒤의 눈치를 살피면서. 눈치를 보는 것, 그것만이 중요한 일처럼 느껴졌다.
이상했다. 불빛을 쥐고 있으니 사람들에게 여기저기 막 말을 걸고 싶어졌다. 회사 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그때처럼.
아주 오랜만에 건물의 7층으로 향했다. 7층에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다 모인다. 나는 담배 피는 사람들을 싫어하면서 좋아하곤 했다. 담배를 피지 않는데도 그들 사이에서 말을 하는 게 좋았다.
오수를 보러 온 것은 아니지만 오수가 역시나 7층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어서 좋았다. 오수는 사부작사부작 비닐 소리가 나는 바지를 입고, 다리를 쩍 벌린 채 모자 끝을 매만지며 담배를 피고 있었다. 언젠가의 술자리에서 오수는 담배를 자주 피는 사람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씨발, 씨발 말끝마다 욕을 했는데 나는 욕하는 여자를 싫어하면서도 좋아했으니까 오수가 꽤 좋았다. 욕하는 남자는 그냥 싫은데 욕하는 여자에겐 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 모를 일이다.
오수는 욕을 많이 하고, 담배도 자주 피니까 생각도 많이 하는 모양이다. 오수는 인스타그램에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드러냈다. 정확히 인스타그램은 오수만의 감성의 장이었는데 정돈된 멋진 사진과 함께 고차원적인 감성을 전시했다. 예술, 그중에서도 사진과 글에 대해 잘 아는 사람만이 그렇게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으면서 드러낼 수 있었다. 나는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오수의 사진들에 감탄하면서 한편 오수가 무언가를 포착한 뒤 주머니에서 작지만 비싼 카메라를 꺼내 들고, 그걸 찍고, 그 사진을 휴대폰으로 옮기고, 그걸 다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일련의 장면을 상상하면 오수를 짓궂게 놀려주고 싶기도 했다. 나는 오수가 나에게 언제나 까칠하게 대하는 것도, 내가 지쳐 더 이상 마음 표현을 포기해 버린 걸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도, 지나가는 마음을 그냥 그렇구나, 내버려 두는 것도 좋았다. 내가 오수의 거절 하나하나에 버림받는다고 느끼는 마음과 별개로.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 확인하는 마음으로만 오수를 바라봤다. 오수를 좋아하기를 자꾸만 유예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곳은 회사니까, 단절이 익숙하니까.
사실은 그보다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회사에서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웃으며 아침을 맞이할 힘이, 플러팅 멘트를 날리고, 함께 술자리라도 마련하고, 즐길 여력이 다 사라졌다. 들떠 붕 떠 있던 마음의 빛을 잃은 거였다. 취업한 뒤 채 세 달도 안 되었을 때였다. 그 시기가 너무 빨리 찾아와 당황스러웠다. 앞으로 이 회사에서 보낼 남은 세월은 어쩌지, 막연히 두려워졌다.
나는 오랜만에 담배를 피우는 오수에게 말을 걸고 싶어졌다.
“오수, 안녕하세요.”
막상 담배를 피우는 오수 옆에 앉으니 할 말이 없었다. 오수도 부러 내게 할 말을 찾지 않았다. 오수는 더 빨리 담배를 피웠다. 나로부터 더 빨리 벗어나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 고질적인 피해의식이었다.
“오수, 요즘 바쁘세요?”
오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출장을 가게 될 거라고 말했다. 출장을 다녀오면 회사를 그만두게 될지도 모른다고 아무렇지 않게 덧붙였다.
“오수, 왜 회사를 그만두세요?”
“여기까지가 끝인 것 같아서.”
오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투로 퉁명스럽게 답했다. 회사생활 6년 차인 오수와 1년도 안 된 나, 우리는 다르면서도 같다고 나 혼자 그렇게 믿었다. 모든 게 다 재미없어졌다는 점에서만은.
나는 오수에게 손을 뻗었다. 오수는 가만히 손바닥을 펼쳤다. 나는 꽉 쥐고 있던 불빛을 오수에게 조금만 나누어줄 요량으로 오수의 손을 잡았다. 순간 오수와 나 사이에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찌릿했다.
“이게 뭐야"
오수가 물었다. 나는 오수의 관심을 자극했다는 점에서 기분이 좋아졌다.
“불빛이에요. 퇴사를 유예할 수 있는 불빛.”
오수는 담배를 끄고 자리에서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담뱃불로 충분해. 그리고 나는 수술 받으려고 퇴사하는 거야.”
“오수, 어디 아프세요?”
“아니… 사람으로 사는 건 여기까지가 끝인 것 같아. 그래서 토끼가 되는 수술을 받을 거야.”
나는 다시 오수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내 불빛을 돌려받기 위해서였다. 나는 오수의 몸에 잠시 머물렀던 불빛 조각을 다시 내게로 가져왔다. 담배 냄새가 조금 나고, 오수 냄새도 나는 불빛을 꽉 움켜쥐었다.
토끼 오수. 상상만으로 기분 좋았다. 오수 없는 회사는 싫지만, 토끼 오수를 상상하는 건 좋았다. 사실 오수가 없다면 내 회사 생활은 조금 더 나아질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기대를 할 필요도 없으니까. 오수가 있을까, 없을까 생각하며 7층에 바람을 맞으러 갈 필요 없고, 오수의 퇴근 시간에 맞춰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릴 필요도 없고, 오수에게 술 마시자고 말했다 거절당할 일도 없고.
“오수, 나는 오수를 좋아해요.”
아마도 오수가 사람일 때 듣는 마지막 고백이 아닐까.
“알고 있어.”
오수는 여전히 퉁명스러웠고, 금방이라도 씨발, 말할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내려봤다. 오수는 토끼가 참 잘 어울린다. 오수에게서는 빛이 났다. 지루함 안에 알 수 없는 생기가 오수를 반짝이게 했다. 남모르게 토끼가 될 상상에 언뜻언뜻 반짝였을 오수를 상상한다.
오수는 인사도 없이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나는 오수의 뒤에 대고 외쳤다.
“오수,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