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나는 원룸에서 살았다. 이태원을 떠난 뒤 머리를 자르고, 어쩐지 마음이 괴로운 상태로 사람 없이 혼자 지냈다.
몇 명의 친구가 우리 집에 들려줬던 것을 기억한다. 어둡고, 좁고, 우울했을 텐데 왜 그랬을까. 림과 D와 채 그리고.
나는 그들의 마음을 영영 잊지 못할 것이다. 나에게는 사람을 만날 에너지가 없었고, 광장 같은 인스타그램에 사람들에게 보일 뭔가를 전시하는 것도 지겨웠다. 다행히 그때 내게는 소설이 있었는데 그 시절의 고립 때문에 한 권의 책을 썼다.
나는 당시 21살이었는데 세간의 스물하나처럼 마음이 생기롭지 않았다. 빨리 늙어 버린 아이인 것만 같았다.
나를 바깥으로 꺼내준 사람은 나의 애인이다. 그걸 아마 나의 애인은 모를 것이다. 그 시절 나는 최선을 다해 멀쩡한 척했기 때문이다.
밥을 먹으면 토하고 싶었지만 밥을 먹었고, 유튜브 쇼츠 같은 걸 보면 좋겠는데 책을 읽었고, 집을 깨끗이 치우고, 옷을 제대로 입고 바깥에 나가고, 머리를 기르고, 모든 상황 최선을 다해 행복한 척했다.
보이고 싶은 모습을 연기하니까 어느새 진짜 나는 그렇게 되었다.
나는 그라는 사람으로부터 새사람이 되었다.
*
나의 마음을 통과해준 애인 덕에 내 마음에는 좁은 길이 열렸다.
열린 마음 길을 따라 내 삶에는 하나, 둘 새 사람이 들어왔다.
마음이 열린 나는 점점 생기로워졌다.
나의 블로그 친구들은 있는 듯 없는 듯 늘 내 옆에 있었다. 외로울 때마다 초록 어플을 눌렀기 때문이다. 호의 24절기 감성을 즐기고, 연락 끊긴 학과 선배의 안부를 듣고, 현지의 모든 것을 읽고, 솜의 유머와 고통과 소설을 읽고, 애인의 과거를 꼼꼼히 되짚고.
애인 덕에 알게 된 인연들도 있다. 용인에 가면 장어와 조개구이를 잔뜩 해주고, 음식보다도 풍요로운 마음을 끝도 없이 내와 주는 멋진 어른들. 나를 웃기거나 울리는 젠 언니의 진심은 늘 따뜻하고, 잔뜩 취한 채 택시를 타고 떠나가는 지현 언니의 뒷모습은 이상하게도 나를 행복하게 한다.
2주에 한 번 함께 모여 글 얘기를 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들 중 누군가가 적극적으로 이 모임을 추진해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나는 내가 알던 것보다 그 사람들을 더 좋아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기회가 없으면 영영 깨닫지 못하는 애정도 있다. 나에겐 유독 그런 애정이 많다.
한 대외활동에서는 말도, 정도 많은 인연도 만났다. 그들과는 거의 매일 밤 zoom 화면으로 만났고, 매주 금요일은 얼굴을 마주했다. 내 카톡방은 늘 볕들 날 없이 어두웠는데 이제는 그들이 매일 내 카톡방을 깨워주고, 문을 두드려줘서 미약하게 연결되었다는 감각을 느낀다. 그 덕에 나는 매일 아침 용감해진다는 걸 그들은 알까.
곧 그들과 함께 만든 프로젝트들이 다 끝나 버린다. 이제 카톡방에서 더 이상 알림이 울리지 않으면 어쩌지, 두려울 정도로 나는 15명이 떠들고, 놀아서 한참 시끄러운 카톡방이 필요하다.
인턴 생활을 하면서 회사에서 만난 멋진 언니들과도 내 멋대로 친구가 되고 싶었다. 매일 음식을 나눠 먹고, 아이디어도 나눠 먹고, 대화도 나눠 먹고, 회사에서 내내 나누기만 하면서 나는 이제 나누는 게 미덕이라는 것을 배워 버렸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 아름다운 진실을 오래오래 거부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음을 나누는 것, 생각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것.
*
마음이 있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걸 오래전, 어딘가에서 배웠다. 마음을 숨기고, 나누지 않으며 살겠다고 다짐했던 건 그래서였을까. 어디서 생긴 상처가 아물지 못하고 나를 피 흘리게 했던 걸까. 그 상처 덕에 여전히 나는 한편 사람이 무섭고, 무언가를 나누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이 두렵다.
며칠 전에는 퇴근하고, 혼자 파스타를 먹고 있었는데 어떤 아이가 나를 빤히 보다 활짝 웃어주었다. 나는 그 아이를 향해 손을 살랑살랑 흔들어주었다. 아이는 꺄르르 웃었고, 아이가 떠난 뒤 나의 별 볼 일 없는 파스타는 세 배쯤 더 맛있게 느껴졌다.
나도 아이처럼 마음을 산뜻하게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럴 수 있는 나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없는지 모른다. 나의 꽉 닫아두었던 마음에는 나이가 없으니까.
그때 알았다. 마음에는 나이가 없다는 거. 어리거나 늙었거나 생기로울 수 있다는 거.
나이가 많아서 마음이 닫히는 게 아니라 시간의 무게만큼이나 켜켜이 상처가 쌓여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거.
*
불씨가 사그라든 뒤 예전처럼 차가워질 내 삶이 두려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던 때가 있다.
왁자지껄 술을 마신 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곧 다 사라져 버리면 어쩌지, 생각할 때. 나는 진심으로 그런 상황이 두려웠다. 그래서 적당히 하기를 선택했다. 마음의 공간을 남에게 내어주지 않기로.
하지만 사람들은 내 빗장 닫힌 마음을 가만두지 않았다. 꺼내주었고, 만져주었다.
결국 사람에게 속절없이 마음을 다 내어주게 되어 버리는 것을.
나에게는 다시 마음을 누릴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이제는 말하고 싶다. 나는 사람이 좋다. 그걸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을 돌아온 것 같지만 아직 내 마음은 늙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