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연다. 몽환의 세계로 간다. 내가 아는 가장 이국적인 도시, 빠이의 야시장 구석진 자리에 있는 그 술집에서는 매일 파티가 열렸다. 빠이에 사는 동안 한 달 내내 나는 그곳에 갔다.
그곳에는 매일 비슷하게 생긴 히피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그들이 어떤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나에게 완전한 미지의 영역이었다. 빠이의 작고, 화려한 그 술집도 마찬가지다.
나는 무한한 미지를 마주하기 위해 매일 그 술집의 문을 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스페인어 음악, 향냄새, 아무에게나 플러팅 해대는 양갈래 머리의 키 큰 서양인 여자, 때가 되면 춤을 추는 사람들과 독한 태국 술. 내가 기억하는 그곳의 조각들이다.
시간이 흘러 나는 이태원에서도 비슷한 공간의 문을 열었다. 국적도, 체형도 제각각인 수많은 게이. 그들은 원형 탁자에 모여 앉아 있었고, 그들에게 술을 시켜주는 건 인텔리처럼 보이는 한국인 남자였다. 나는 낡은 붉은색 소파에 걸터앉아 언니라고 불리는 사장 아저씨의 힐 신은 발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는 잿빛 체육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생전의 우리 외할아버지를 닮아서 당황스러웠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이태원에 살 때 그곳을 자주 갔다.
문을 열기 위하여. 세계에서 세계로 건너가기 위하여.
문을 연 기록은 다 소설이 되었다.
사람들은 나에게 난해한 것을 쓰지 않으면 죽는 병에 걸렸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문장 구조를 전부 비틀어 아무도 내가 쓴 것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마지막의 마지막. 나의 애인에게 "네 글을 이해하지는 못하겠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건 마지막의 마지막. 나는 나의 애인과 만난 뒤로 내가 쓰던 것을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되었다. 정확히는 쓰지 않게 되었다. 분명한 세계는 지나치게 안락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이야기 구조가 분명한 소설을, 상을 받을 것 같은 소설을, 사람들에게 읽힐 글을 썼다. 자본주의적인 글이었다. 그것은 쓴다, 보다는 만든다는 표현과 더 잘 어울렸다.
애인이 내게 와서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나는 하필 그 순간 변화의 궤도에 오른 것일까.
나는 멈춰 있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다.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는 것만 정제해서 글을 만들었다. 그것을 조각하고, 해체하고, 야금야금 핥아먹었다.
나는 나를 표현하였다. 하지만 내가 표현한 나는 정제된 나였다. 정제된 나는 나를 억압하였다. 표현은 나를 억압하였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말하고 싶은데 말하고 싶지 않다.
동시에 나는 점점 선명해진다. 나에게 말고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없는 흐릿한 나는 더 꽁꽁 숨는다. 내 품 안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한다.
나는 문을 연다. 기실 나는 나를 설명할 수 없다. 나뿐 아니라 세계도 사람도 어떤 사랑과 우정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분명한 글을 쓸 수 없다.
오랫동안 나는 누가 날 바늘로 쿡 찔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봇물 터지듯이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거라고.
그것을 처절히 깨달은 나는 이제 소설을 향해 간다. 그곳으로 가는 문을 연다.
자판기 앞에서 시간을 때운다. 돈을 내지 않았는데도 뭔가가 나를 향해 굴러온다면 내 것인 줄 알고, 그것을 받을 요량으로. 나는 이렇게 나에게로 굴러와 우연히 나를 살게 할 것들을 기다리고 있다.
다시 아무렴 어떤 마음으로 거짓말을 평온하게, 진실을 삭막하게 이야기한다.
끝. 나는 소설 아닌 문장으로 단 한 문장도 쓰지 않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