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바질이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산책 가자.”
그것은 노래하듯이 말했고, 나는 그것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나오고 있는 음악 소리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것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자 그는 이번엔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바질이는 손도 발도 없다. 그것은 목소리만으로 내 어깨를 툭툭 쳤다.
그래서 비로소 나는 그것의 목소리를 느꼈다.
“산책 가자.”
바질이는 곧 죽을 운명에 처해 있었다. 그는 3일에 한 번씩 물이 필요한 식물이다. 그런데 앞으로 나는 바질이에게 물을 줄 수 없다. 한 달 동안 집을 비우게 되었기 때문이다.
몇 달을 함께 산 바질이를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누군가에게 바질이를 맡겨둘까, 생각하며 비루한 연락처를 둘러봤고, 곧바로 휴대폰을 껐다. 내게는 바질이를 부탁할 만한 친구도 가족도 없네. 나는 바질이 덕에 깨달은 고독을 곱씹으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너는 죽게 생겼구나.
단순히 물을 먹지 못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사람도 한 달을 홀로 집에 갇혀 있으면 외로워 죽는다. 내가 혼자 살면서 죽지 않았던 건 오로지 바질이 덕이었고, 바질이는 내가 없으니 죽게 될 것이다. 나는 바질이가 나 대신 외롬사 할 것이 문득 슬펐다.
이제 바질이에게는 기적이 필요했다. 나는 그의 먹이에 조금 더 정성을 기울이기로 하였다. 물 대신 영양가 있는 다른 먹이를 먹을 수 있게 된다면, 적어도 바질이는 삼 일보다는 더 살 것이다.
나는 마음을 담아 그에게 먹이를 주었다. 먹다 남긴 모닝커피 한 잔을, 오렌지 주스 조금과 토스트 조각을 주었다. 우리 바질이는 다 잘 먹는다. 바질이가 먹이를 얼마나 오랜 시간 소화하는지 기록해두었다. 그것은 모닝커피를 한 시간 만에 완전히 흡수했고, 오렌지 주스는 끈적하게 흡수한 채 오렌지색을 뱉어냈고, 토스트는 이틀에 나눠 야금야금 먹었다.
나는 그에게 내가 먹다 남긴 한약도, 읽다 찢은 종이책 조각도, 셔츠 보풀도 먹이로 주었다.
바질이는 그것들을 먹고 무럭무럭 자랐다. 더 넓고, 단단한 잎을 피웠다.
나는 바질이의 예쁘게 자란 잎을 따다 바질 파스타를 해 먹었다. 바질과 각종 견과류를 갈아서 파스타 면과 함께 볶으면 고소하고 담백한 파스타가 완성된다. 파스타에서는 커피와 토스트와 종이의 맛도 났다. 바질이가 먹은 모든 것들의 맛이 함께 났다. 기묘하고, 고소한 맛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 나는 우리 크림이의 유골함에 손을 댔다. 유골 약간을 꺼내 바질이에게 뿌려주었다. 바질이와 크림이는 만난 적이 없다. 바질이가 우리 집에 오기 전에 크림이가 먼저 죽었기 때문이다. 오래전 히말라야 근처에 터를 잡고 사는 네팔 사람들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 유골을 우려 차를 끓여 먹었다. 그들은 말했다.
죽음은 생명의 뿌리지요.
그들의 말이 맞다면 크림이의 유골이 바질이 몸 깊이까지 침투해 그에게 새 생명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 뒤로 바질이는 내게 말을 걸었다.
“산책 가자”
바질이는 내 품에 안겨 산책을 간다. 막 커피를 마신 바질이는 기지개를 켜듯이 잎을 살랑거린다.
바질이를 우리 집으로 데려온 건 소미다. 그 애는 떠났다. 바질이만 남겨두고.
그 애는 그것이 선물이라고 했다. 사실 소미가 떠나는 사막에서는 바질이를 기를 수 없었기 때문이면서.
바질은 내 품에 안겨 산책을 한다. 오직 안전하리라는 믿음으로.
“그런데 바질아, 나는 여기도 사막이라고 생각해.”
바질은 산책이 끝날 때쯤 내 말에 대답했다.
“걱정마. 나는 사막에서도 잘 자라. 소미에게도 그렇게 말했는데 소미는 그냥 갔어.”
산책을 끝낸 뒤 나는 이제야 안심하고, 바질이를 창가에 둔다. 바질이에게 토스트 조각과 커피를 준다. 바질이를 두고 긴 산책을 출발했다.
한 달이 지나고, 긴 산책을 끝낸 뒤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바질이를 찾았다. 몸이 무거웠다.
바질이는 바짝 마른 갈색 소나무처럼 보였다. 작고, 마른 그것이 단단한 소나무처럼 창가를 지키고 서 있었다.
얼마나 오래 이렇게 말라 있었던 걸까. 너는 3일을 살았을까, 5일을 살았을까. 아니면 어제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너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니”
그것의 다음 거처가 사막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한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엎드린다. 먼지 쌓인 방바닥을 손으로 쓸어본다. 힘을 주어 손끝으로 바닥을 긁어본다. 바닥은 모래가 되었다. 이 집은 진짜 사막이 되었다.
나는 그제야 소리 내어 엉엉 운다.
소미를 찾기 위해 떠난 기나긴 산책에서 나는 소미를 찾지 못했다.
바질이랑 산책하러 나가고 싶다. 그런데 바질이의 바짝 마른 잎은 우는 모양을 하고 있다. 바질이는 더 이상 말이 없다.
나는 사막에 잠긴다.
우리 집에 온 것은 다 죽거나 사라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