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건 별로 바이러스다. 별로 바이러스는 유행병만큼 복불복으로 내 삶에 찾아온다. 별로 병에 걸리면 내가 참 별로라는 생각을 하루에 만 번쯤 하게 된다. 끔찍한 병이다.
고등학생 때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끝나면 별로 바이러스에 감염되곤 했다. 시험공부를 하고, 시험을 치르는 과정에서 내가 공부를 하기에는 어딘지 어긋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해야 했기 때문이다. 집중력도, 이해력도 고만고만한 나는 최선을 다해도 늘 어중간한 성적을 받았고, 공부로만 몸 값이 매겨지는 6년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그동안 별로 병에 내성이 생겼다.
하지만 성인이 된 뒤로 나는 더 자주, 더 극심하게 별로 병을 앓았다. 병에 걸리면 외출을 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블로그, 세상과 연결되었다고 느끼게 만드는 모든 매체를 삭제해 버린다. 나를 철저히 고립시킨다. 내가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별로 바이러스에 걸리면 나는 소중한 사람과 잘 싸우고, 그래서 그를 쉽게 떠나보내기도 한다.
별로 바이러스에 가장 오래 감염되었던 기간은 두 달이다. 두 달 내내 나는 낮에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밤이 되면 따릉이를 타고, 중랑천을 돌았다. 아주 많은 사람들과 연락을 단절하고 지냈다. 별로 바이러스에 걸릴 때마다 나는 사람을 잃었다.
며칠 전에는 컴퓨터 활용 능력 필기시험을 치르기 위해 일주일을 공부했고, 58점을 취득해 불합격을 받았다. 면역력이 떨어져 있던 나는 별로 바이러스의 침투를 받았고, 내가 별로라는 생각만 하루에 만 번 하기 시작했다.
나는 진짜 별로다. 나는 내가 너무너무 싫고, 이왕이면 나를 없애 버리고 싶다. 내가 별로라는 생각만으로 하루를 꽉 채우고 있다.
우울할 땐 소설을 쓴다. 살만할 때는 에세이를 쓴다. 요즘은 살만해서 에세이를 꾸준히 써보겠다고 한 주 한 편의 살편살지를 익명의 다수에게 약속했다. 하지만 나는 안타깝게도 아주 많은 순간 이제 그만 살고 싶은 이유에 대해 고민한다. 나는 건강하지 않은 창작자다.
별로 바이러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책상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써야 한다. 하지만 책이 잘 읽히지 않거나 글이 잘 써지지 않으면 별로 바이러스가 악화될 수 있다.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그냥 좀 걷기로 한다.
한참을 걷다가 면목동의 미소 고양이를 만났다. 미소는 빌라 '미소 공간' 근처에서 자주 출몰하는 고양이다. 그는 내가 미소 공간 앞을 지나갈 때면 달려 나와 내 다리에 자신의 몸을 비비며 애교를 부린다. 나는 그를 '퐉스'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미소의 애교는 나에게만 향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미소 공간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달려들어 애교를 부리고, 면목본동의 모두에게 사랑을 받는 '퐉스' 같은 고양이였다.
미소는 나에게 달려왔다. 그는 내 손의 온기에 잠시라도 기대어 있겠다는 듯 내 손에 얼굴을 비볐다. 미소는 추워 보였다. 나는 곧바로 집으로 가서 커다란 상자에 신문 여러 개와 수건을 깔고, 담요를 덮었다. 뽁뽁이로 상자를 감싼 뒤 미소를 찾아 나섰다. 미소는 나와 만났던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미소 공간의 주차장 너머에 미소의 집을 놓아주었다. 미소는 박스를 두어 번 툭툭 치자 박스 집 안으로 폴짝 뛰어 들어갔다. 나는 미소를 쓰다듬었다. 미소는 내 손에 또다시 얼굴을 비볐다. 미소는 나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미소를 보며 나에게 필요한 건 연결 감각이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추운 것도, 아프고, 슬픈 것도 혼자만의 것은 아니라는 다정한 마음. 미소 덕에 나는 우리의 연결 감각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책상에 앉았다. 익명의 누군가와 나 사이의 연결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이 편지를 쓰고 있다. 내가 별로여도, 내 글이 별로여도 상관없는, 그저 한 주 한 편의 약속에 불과한 이 글을 쓰고 있다.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듯이,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듯이, 슬픔도 같이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믿음과 함께.
이번에 나의 별로 바이러스가 얼마나 가려나 모르겠다. 오늘 쓴 글 덕에 내일은 씻은 듯이 병이 나았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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