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리어카를 끌고 가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씨팔 것들. 찌르듯이 날카로운 고음의 욕설이 내 귀에 꽂혔다. 그녀는 골목길 너머가 광포한 동물의 아가리라도 되는 듯 한참을 멈칫거리며 좁은 골목길을 꾸역꾸역 헤쳐나가고 있었다. 나는 둥글게 굽은 할머니의 등을 노려보며 그녀와 발을 맞춰 천천히 걸었다. 담벼락 옆에 내동댕이쳐진 음식물 쓰레기에서 썩은 생선 냄새가 났다. 일순 할머니가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씨팔 것들. 그녀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욕을 내뱉으며 다시 리어카를 끌기 시작했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왔다. 중랑천에는 알 수 없는 활기가 잔잔히 고여 있다. 이곳에서 걷거나 달리는 사람들의 몸에서는 좌절을 동반한 하루 치의 열정이 뿜어져 나온다. 나는 생의 열기에서 솟아나는 미묘한 비린내를 맡는다. 땀 냄새 같기도 하고, 지독한 침 냄새 같기도 하다. 사람에게만 나는 생의 냄새다. 나는 후드집업 자크를 목 끝까지 채웠다. 오늘은 완연히 날이 풀린다더니 아직 봄은 아닌 모양이다.
벤치에 걸터앉아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배가 고팠다. 아침에 일어나면 줄곧 눈물이 나고, 그래서 도망치듯 중랑천을 걷고, 걸으면 배가 고파온다는 게, 그 규칙적인 순환이 잔인하게 느껴졌다. 나는 몸을 일으켜 장미 매점 쪽을 돌아봤다. 멀리서 사발면 냄새가 풍겼다.
오늘은 아줌마 대신 학생처럼 보이는 여자애가 매대를 지키고 서 있었다. 나는 메뉴판을 빠르게 훑고, 열라 면을 주문했다.
단무지도 드려?
나는 장미 매점 너머로 펼쳐진 강을 내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텐트 안으로 들어가 강이 보이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발면과 단무지, 맥반석 계란 하나가 탁자에 놓였다. 나는 급하게 사발면 뚜껑을 뜯었다. 면을 씹지도 않고 삼켰다. 단무지 여러 개를 한 번에 입안에 넣고 부러 경쾌하게 단무지를 씹었다. 금세 면이 다 사라졌다. 맥반석 껍질을 벗기고, 계란을 라면 국물에 빠뜨렸다. 젓가락으로 계란을 자르고 휘휘 젓자 계란 노른자가 흩어지며 라면 국물 위로 떠 올랐다.
여자애는 한 손에 걸레를 든 채 막걸리를 세 병째 마시고 있는 늙은 남자의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언제 오려나, 하고 남자가 말하자 여자애는 올 때 되면 오겠지, 하고 무심하게 답했다. 그녀는 커다란 몸을 자그마한 의자에 억지로 욱여넣고, 슬리퍼를 신은 발을 까딱까딱 흔들어댔다.
네 엄마는 외로운 사람이란다.
남자는 막걸리를 단숨에 삼켰다. 그리고 자신의 두피를 과격하게 긁기 시작했다.
알아. 그런 건 유전이야.
여자애는 무표정을 짓고 조용히 뇌까렸다. 나는 계란을 한입에 넣은 뒤 짜파게티와 감자칩을 추가로 주문했다. 그녀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고 슬리퍼를 끌며 매대를 향해 걸어 나갔다.
짜파게티와 감자칩, 맥반석 계란과 물 한 잔이 탁자에 놓였다. 사발면의 뚜껑을 뜯고, 불어터진 면을 입안에 욱여넣었다.
나는 여자애의 엄마를 기억한다. 그녀는 나에게 규칙적으로 햇빛을 쫴야만 사람답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입에서 나던 구린내를 기억한다. 그녀의 말은 내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는데 여자는 쉬지 않고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그녀는 텐트 밖으로 나가 물이 가득 찬 양동이 앞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양동이에 담긴 걸레를 빨아 분리수거 통을 꼼꼼하게 닦기 시작했다. 나는 양옆으로 흔들거리는 그녀의 거대한 엉덩이를 보면서 사발면을 먹었다. 나는 그다음 날에도 장미 매점에 왔다.
*
부대찌개 이 인분에 만원
의자에 걸터앉아 의무적으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목에서 쉰 소리가 났다. 정물 수산에는 젊고, 건강해 보이는 새 직원이 들어왔다. 그는 바지락이 철이라는 말을 쉬지 않고 반복했다. 누군가 정물 수산 앞에 멈춰 서기라도 하면 손님을 붙잡고, 놓지 않을 태세로 오늘 잡은 새우의 신선함을 강조했다. 그를 보며 분명 생존에도 재능이란 게 있을 거란 생각을 한다.
둘리 씨는 부대찌개 이 인분을 포장해달라고 했다. 나는 냉동실 문을 열고 부대찌개 팩 두 개를 꺼냈다. 언 팩과 손가락이 달라붙었다. 나는 팩에서 손을 떼지 않고 멈춰 있었다. 잠시 뒤 힘주어 팩을 떼어내자 검지 손가락에 생채기가 나 피가 고였다. 나는 팩 두 개를 검정 봉투에 담아 건넸다. 둘리 씨는 봉투를 받아든 뒤, 내게 개피떡이 담긴 스트리폼 접시를 내밀었다. 나는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이고 떡을 받았다.
둘리 씨와 그녀의 남편은 403호에, 나와 세은은 402호에 살았다. 그날 빌라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둘리 씨와 나뿐이었다.
둘리 씨는 시장에서 처음으로 나를 마주쳤던 날 죽은 사람을 본 것처럼 흠칫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다. 우리 둘 다 이제 그만 이 동네를 벗어날 만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용마산에서 동원시장 근처로 나란히 이사를 왔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무언가를 들킨 사람처럼 어색하게 웃기 시작했고, 종래에는 낄낄 소리를 내며 웃었다.
세은은 둘리 씨와 친해진 뒤로 나를 귀찮게 하곤 했다. 하루는 둘리 씨가 아귀찜을 만들어두었다며 우리를 그녀의 집으로 초대했다. 세은은 먼지 쌓인 오븐을 창고에서 꺼내와 오트밀 쿠키를 굽기 시작했다. 세은이 그날 구운 오트밀 쿠키는 대부분 바닥이 타 버렸고, 멀쩡한 쿠키는 세 개뿐이었다. 세은은 조악한 꽃 그림이 그려진 봉투에 쿠키를 하나씩 담아 넣고, 스티커까지 붙였다.
둘리 씨의 집에서 세은은 소맥 몇 잔을 연달아 마시고 술에 취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사는 일에 대한 한탄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언제 한번은 전에 사귀던 여자애를 만나고 오겠다는 게 아니겠어요? 그날 술까지 마시고 왔지 아마.
세은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노려보고 있었다.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와 세은과 언성을 높여 싸웠다. 다른 것보다도 남들 앞에서 세은이 나를 ‘얘’라고 부르는 것에 화가 났다. 나는 졸리다며 자꾸만 침대에 눕는 세은을 몇 번이고 일으켜 세워 고함을 치고 화를 냈다.
둘리 씨는 우리 집의 모든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싸우는 소리, 생선을 구워 먹는 소리, 자지러지게 웃는 소리, 무한도전을 보는 소리, 우리가 섹스하는 소리까지도. 그녀는 우리의 모든 소리를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둘리 씨가 두고 간 떡을 내려봤다. 랩을 벗겨 개피떡 하나를 한입에 넣었다.
부대찌개 이 인분에 만 원~
씹다 만 개피떡을 오른쪽 볼에 옮기고 고함을 쳤다. 오른쪽 볼에서 바람이 숭숭 빠졌다. 정물 수산에 손님 여럿이 모여들고, 사라지는 동안 초롱고모 부대찌개는 고작 부대찌개 십 인분을 팔았다.
초롱고모는 냉동실 문을 열고, 오늘 팔린 팩의 개수를 세어 봤다. 나는 앞치마를 의자에 개어둔 뒤, 걸레로 매대를 닦기 시작했다. 초롱고모는 외투를 벗고, 립스틱을 발랐다. 그녀가 이곳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저녁에는 부대찌개가 더 팔릴 수 있을 것이다. 초롱고모는 내게 부대찌개 팩 하나와 라면 사리를 내밀었다.
저녁 챙겨라.
나는 초롱고모가 나를 자르지 않는 이유에 대해 한참 생각했다. 그녀가 길에서 주워 키우는 초롱이와 네 마리 강아지들처럼 나도 주워 키워주는 마음일 거라고 정리했다. 나는 부대찌개 팩을 받아들었다. 진흥마켓에 들러 팽이버섯 하나를 샀다. 봉투를 달랑달랑 흔들며 동원시장의 소리를 듣는다. 생선가게에서 철퍼덕 물을 뿌리는 소리와 딸기 세 팩에 만 원 외치는 목소리, 닭강정을 튀기는 소리와 뻥튀기가 튀어 오르는 소리. 동원시장의 소음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녹음기를 켰다. 시장의 끝에서 몸을 돌려 다시 시장의 출구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잠이 오지 않을 때 이걸 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