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제각각 지독한 면이 있다. 그들의 지독한 면면은 못났지만 귀엽다. 한 꺼풀 벗겨낸 속살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내가 왜 그들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우리 할머니 둘남은 팬심 앞에 지독하다. ‘장구의 신’ 박서진의 열혈 팬이다. 팬클럽 운영진인 둘남은 박서진 공연 일정이 잡히면 버스를 대절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인다. 고속버스에 사람들을 싣고, 포항, 창녕, 대구, 먼 길을 떠난다.
얼마 전 박서진은 유산균 광고를 찍었고, 둘남의 집 창고에는 유산균 세 박스가 쌓여 있다. 둘남은 엄마와 이모들, 그리고 우리 집에 각각 한 박스씩 박서진 얼굴이 큼지막하게 박힌 유산균을 보내왔다. 그런 둘남을 보며 엄마는 말한다.
“진짜 지독하다 지독해.”
우리 엄마 수혜는 돈 앞에 지독하다. 수혜와 방콕 여행을 갔을 때가 기억난다. 수혜는 짜뚜짝 시장에서 원피스 가격을 깎기 시작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다리를 넓게 벌린 채 100밧은 더 깎아줄 수 있지 않으냐고 우겼다. 수혜는 결코 상글상글 웃거나 비굴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결국 500밧이었던 원피스는 300밧이 되었고, 수혜는 당당하게 짜뚜짝 시장을 걸어 나왔다. 수혜는 능청에 재능이 없어서 지독함을 무기로 내세웠는지 모르겠다.
지독함이란 이토록 인간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