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년 전 한 대학 수업에서 바바(그녀의 닉네임)를 만났다.
그리고 그 수업이 종강할 무렵 나는 바바의 집에서 화려한 비건 요리 한 상을 얻어먹었다.
그 수업은 학기가 끝날 때 책 한 권을 만들어 과제로 제출해야 했다. 10명 남짓 수강생들은 매주 글을 써서 수업에 가져왔고, 그것을 수강생들과 나눠 읽었다.
첫 수업 자기소개 시간 바바는 자신을 퀴어라고 소개했다. 재밌었던 점은 자신의 이름을 말하기도 전에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저는 퀴어입니다.”
나는 대학 강의 첫 수업에서 꼭 선언하듯이 퀴어라는 사실을 말해야 했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그에게 자신이 퀴어라는 사실은 자신의 이름보다도 더 중요한 무언가일까 예감만 했다.
두 번째 수업 날을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바바는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는 교수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번쩍 손을 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사과하세요.”
그녀는 또 한 번 선언하듯이 그 말을 했다.
사건은 이러했다. 그 수업에는 바바를 제외한 또 한 명의 퀴어가 있었다. 교수는 연애사를 담은 그의 글을 읽고, ‘애인’이라는 만능 표현 대신 ‘여친’이라는 표현을 용감하게 내뱉어 버렸고, 그 일로 바바는 교수가 그의 연애를 왜곡했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조심스럽게 어휘를 골라달라는 바바의 말에 사려 깊은 교수는 진심을 담아 그녀와 그에게 사과했고, 일주일 뒤 교수가 연재하는 칼럼에 애인이라는 표현에 대한 글이 올라가기도 했다.
세 번째 수업이 끝날 때 바바는 흡족하다는 듯이 교수에게 칼럼을 잘 봤다고 말했고, 이 사건은 전쟁으로 번지지 않았다. 전적으로 교수 덕이다.
교수와 바바의 작은 사건은 막을 내렸다고 해도 수업 중 바바의 투쟁은 계속되었다. 좋게 말하자면 투쟁이지만 나쁘게 말하자면 만행이었다.
그녀는 학생들이 써온 글을 이리저리 뜯어보고, 말을 보탰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한 학생의 글에 가족들이 아버지가 사 온 치킨을 뜯어 먹는 장면이 등장했다. 바바는 그 학생의 글을 피드백하는 시간,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치킨을 먹는 장면은 이 글에서 왜 필요하죠? 가족들이 한바탕 축제를 벌이는 장면에서 왜 항상 치킨과 돼지고기가 등장하는 거죠?”
그녀는 치킨이 어째서 온 가족 행복의 표상이 되냐고 묻고 있었다. 글을 써온 학생은 벙찐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 잊고 있었다. 바바는 첫 수업 자기소개 시간 자신을 퀴어, 채식주의자라고 소개하지 않았던가. 자신이 완전 채식을 실천하는 비건이며 채식에 대한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는 말도 더했다.
고기를 실제로 먹는 것뿐만 아니라 글에 고기 먹는 장면이 담기는 것마저 불편하다니. 나는 글을 써온 학생을 주눅 들게 하는 바바의 말과 태도가 훨씬 불편한 상태로 내 글 속에 고기 먹는 장면이 담겨 있지 않나 빠르게 스캔했다.
“글을 쓰는 우리들, 창작자들의 변화가 고기에 대해 독자들에게 다른 생각을 주죠.”
그날의 수업은 어느새 바바의 수업이 되어 버렸다. 교수는 또 어떤 칼럼을 써야 하나 고민하는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그 장면을 방관했다.
*
내가 본 바바는 운동하듯이 사는 사람이었다.
나는 운동하듯 사는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해왔다.
대학에 입학하고, 잠시 몸담았던 한 운동권 동아리에서도 사람들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온갖 빈곤 시위에 참여했다. 플라스틱을 일절 쓰지 않기 위해 삶의 편안함은 대부분 포기하며 사는 사람들도 많았다.
당시 나는 그 동아리의 한 선배에게 이렇게 물었던 것을 기억한다.
“세상은 변하지 않는데 (당신들은) 왜 이렇게 열심일까요?”
그는 나를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바바도, 그 동아리 사람들도 다 이상했다. 그런데 ‘이상하다’는 마음은 나를 오히려 그쪽으로 이끈다. 편안한 세계보다 도저히 이해가 안 돼서 낯선 세계에서는 마음이 자주 요상한 방향으로 요동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결국 이상한 세계로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간다.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시위에 나가고, 바바를 욕하는 대신 바라보기를 선택하는 것처럼. 그 안에서 참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
하루는 바바가 나에게 DM을 보내왔다.
“우리 카페에서 같이 작업하지 않을래?” 하고.
바바가 다른 수강생들과 달리 나는 예뻐하고 있다는 건 이미 수강생 모두가 아는 사실일 것이다. 별 이유는 없고, 내가 수업에서 만들 책의 테마가 그녀의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빠 욕을 한참 하는 글을 써서 매 과제로 제출했다.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의 끔찍함을 토로하는 그녀에게 우리 가족의 흠과 나의 고백은 반가운 것이었을지 모른다.
바바말고, 이 수업에는 또 자기가 교수 노릇을 하려 드는 13학번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가부장제를 지적하는 건 낡은 책으로 전락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라며 나를 가르치려 들었다. 이건 그냥 내 이야기일 뿐이라고 몇 번이고 말해줘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급기야 ‘아버지는 얼마나 힘들었겠니’ 뉘앙스를 풍기며 한 번도 같이 살아본 적 없는 우리 아버지를 지지하고 나섰다.
언제든 싸울 준비가 된 바바는 나 대신 그와 맞서 싸워주었다. 딱히 고맙지는 않았고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그 둘이 끌어가는 논쟁 수업을 멀찍이 떨어져 지켜볼 뿐이었다. 그 13학번 남자가 꼬옥 가부장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길 바라며.
바바와 카페에서 만났을 때 그녀는 수업 시간의 그녀와 좀 다른 사람 같았다. 묘하게 바바의 기분이 들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 반삭 머리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좋아하는 가수를 말했을 때 황소윤이라고 답한 것도 그를 기분 좋게 했다. 바바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도 나랑 같은 쪽이라고 생각해도 되지?”
세상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어 버렸다. 내가 반삭 머리라는 점과 황소윤을 좋아한다는 점,그 두 가지가 나를 어떤 ‘쪽’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게 웃겨서였다. 저쪽이었던 내가 머리를 자르면 이쪽이 된다니, 아버지를 욕하는 글을 쓰면 이쪽이 된다니. 세상 간편했다.
나는 평생 이쪽인지 저쪽인지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다. 나는 ‘바바를 이상한 쪽이라고 생각하는 쪽’이었을 뿐이다. 그의 오해는 불쾌하면서도 흥미로웠다. 사람들은 쉽게 사람을 어떤 쪽에 둔다는 사실이.
사실 나도 바바를 어떤 쪽에 두고 있지 않았는가.
바바는 나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비건 요리를 해주겠다는 명분이었다. 그녀는 세상 모든 야채를 튀겨서 탁자에 내왔고, 비건 칠리 마요 소스를 포함한 세 가지의 이국적인 튀김 소스도 함께 내왔다. 그녀는 수업 시간에 보이던 투쟁하는 사람의 이미지는 완전히 사라진 채 내게 다정하게 말했다.
“비건이 아닌 사람한테 어떤 음식을 만들어주면 좋을지 늘 고민해. 비건이 좋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나는 그녀가 활짝 웃는 모습을 처음 봤다. 수업 시간의 그녀는 늘 무표정이라는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어쩌면 바바는 나를 ‘안전한 쪽’이라고 생각해 마음이 편안해졌는지 모르겠다.
바바를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조금 마음이 찔렸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안전한 쪽이 맞았다. 왜냐하면 나는 바바의 집에서 우리 집으로 돌아와 채식주의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1년 동안 달걀과 우유도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로 살았다. 바바의 운동이, 그리고 누군가의 운동이 사람을 움직일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적어도 바바 앞에서 나는 이상한 것이라 생각했던 무언가에 마음이 동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
바바와는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채식주의자도 아니고, 황소윤을 좋아하지도 않고, 반삭 머리도 아니다. 이런 나는 이제 이쪽일까, 저쪽일까.
바바를 다시 만나게 된대도 바바, 난 너랑 같은 쪽이야, 그렇게 말할 수 없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어느 쪽도 아닌 채로 이쪽과 저쪽을 오가며 놀듯이 살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알 것 같다. 내가 알던 이상한 바바 또한 이쪽도 저쪽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바바는 내가 아는 모습, 그 이상의 바바였을 것이다.
요즘 다시 채식주의자 쪽으로 가고 싶은 나는 나에게 바바처럼 온갖 야채를 튀겨줄 사람이 필요하다. 이쪽으로 와~ 끌어줄 수 있는 채식주의자 친구를 만난다면 나는 그 앞에서는 기꺼이 이쪽 사람이 되어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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