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커피집 딸래미다. 호평동에서 자란 12년 동안, 나는 저어기 이마트 뒤편 커피집 딸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카페가 아니라 커피집이라 불리는 이유는 일말의 고급스러움도 찾아볼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엄마 카페를 C급 카페라고 부르곤 했다.
엄마 카페에서 유년기를 다 보내서였을까 나는 성인이 된 지금까지 C급 카페만 찾아 다닌다.
이사할 때마다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집 근처 C급 카페 위치 확인이다. 때가 탄 소파 의자나 흔들 그네 의자에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아, 2,800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아 마시는 게 어울리는 C급 카페. 나는 기필코 안락한 그 공간의 단골이 된다.
어렸을 때 나는 세상에서 우리 엄마 커피가 제일 맛있다고 생각했다. 커피를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아이였는데도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소심한 초등학생인 나는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친해지고 싶은 친구들을 데리고 엄마의 커피집으로 향했다. 그럼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로 우리를 환대했다. 엄마는 초콜릿 프라푸치노와 녹차 빙수, 아이스크림 와플 따위를 내왔다. 아이들은 와~ 하며 놀라고, 기쁜 표정으로 예쁘게 생긴 달콤한 디저트들을 열심히 입에 넣었다. 그것들이 바닥을 드러낼 때쯤 나는 의기양양해져서 말하곤 했다.
"나를 만나러 언제든 여기 와도 좋아, 맛있는 걸 많이 많이 줄게."
나는 그들과 친해지고 싶었다.
애들이 카페를 나가 집으로 돌아가면 나는 엄마가 있는 주방으로 쪼르르 들어갔다.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통창 너머로 보면서, 엄마는 참 기분 좋은 애들이구나, 말했다. 애들이 먹은 와플과 빙수 그릇을 치우고, 닦는 엄마는 나에게 구세주처럼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친구들은 C급 카페인 엄마의 커피집보다 공주풍으로 꾸며진 맞은편 핑크 카페를 더 좋아했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은 어김없이 핑크 카페에 가자고 말했고, 나는 외쳤다.
"야 그러지 말고, 우리 카페나 가자."
나는 당시 내가 경쟁사 카페에 가는 건 엄마의 커피집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 친구들을 위한 공짜 음료를 매일 만들던 엄마는 어느 날부터 우리를 환대하지 않았다. 음료가 다 나오면 퉁명스럽게 가져가, 말할 뿐 더 이상 음료를 가져다주는 서비스도 없었다.
하루는 나 빼고 애들끼리 핑크 카페에 갔다는 걸 알게 됐다. 속으로 그 애들을 얼마나 저주했는지 모른다. 나는 그 애들이 핑크 카페에 간 것은 내가 핑크 카페에 간 것만큼이나 커다란 배신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그렇게나 얻어먹었으면서!
자라면서 나에게 엄마의 커피집은 점점 애증의 공간이 되었다. 커피집에 앉아 있으면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을 너무 많이 들어야 했다.
옆자리 아줌마들은, 여기 커피는 너무 쓰고 맛이 없다고 중얼거렸다. 술 취한 할아버지 손님은 엄마에게 자리에 앉아 함께 커피를 마시자고 수작을 부렸다. 엄마 친구들은 커피 향이 가득해야 할 커피집에서 떡볶이와 김밥을 시켜 먹었다.
커피집에서 가녀장 우리 엄마의 삶을 엿보는 일이 나에게 점점 힘들어졌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휴일 없이 7일 내내 일하는 엄마, 알바를 쓰면 적자인 손님 없는 가게, 그렇다고 십 몇 년째 해온 카페 일 말고 다른 일을 도전하기에는 두려운 엄마. 가녀장 엄마.
우리 네 식구는 엄마가 커피 판 돈으로 잘 먹고, 잘 살았다.
얼마 전부터 나는 커피를 마시면 안 되는 사람이 되었다. 빈혈이 심해져서 체력이 극도로 떨어졌다. 커피는 빈혈 환자에게 극악인 식품이다.
커피를 끊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어째서, 어쩌다, 커피를 이렇게나 좋아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대학 신입생 때 학교 앞에서 테이크아웃해 매일 마시던 800원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맛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선물 받은 일리 커피머신으로 내려 마시는 커피의 편리함에 반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이유를 포함해 커피는 나에게 가장 정다운 무엇이기 때문이다.
멀리 있는 나의 고향은 커피 향이 잔뜩 배어 있는 동네로 기억된다. 실제로 우리 커피집은 내 고향에 최초로 세워진 카페였다. 얼마 뒤 바로 우후죽순 카페들이 들어서긴 했지만.
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게 엄마는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독촉하는 대신, 커피를 내려주는 사람이었다. 여전히 한 달에 한 번 엄마를 만나러 고향에 있는 커피집에 가면 엄마는 나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하고, 가장 좋은 것이라는 듯 커피를 내려준다.
나에게 커피는 결코 잃고 싶지 않은 모든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디카페인 아메리카노와 함께 이 글을 쓰고 있다. 디카페인도 카페인 함량이 꽤 높다는 걸 알기 때문에 벌컥벌컥 들이킬 수는 없다. 커피 향을 느끼면서 아주 조금씩만 홀짝홀짝 마신다.
커피집 딸래미가 도대체 어떻게 커피를 끊을 수 있단 말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