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부터 화요일과 목요일 아침 9시에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있다. 극심한 생리통을 개선하기 위해 한의사 선생님과 두 손을 꼬옥 붙잡고 그러겠다고 약속한 일이다. 나는 의사 선생님과의 약속은 손쉽게 어겨 버리는 사람인데 이상하게 이번 약속은 최선을 다해 지키고 있다.
그는 나의 생리통의 요인으로 빈혈과 스트레스를 들었다.
“한약은 빈혈 개선을 위해 피를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고, 침은 스트레스 개선에 효과적이에요.”
“침을 맞으면 스트레스가 줄어드나요?”
그는 그렇다고 말했다.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지만 어쩐지 믿고 싶어지기도 했다. 스트레스가 어떻게 나을 수 있는 질병이란 말인가.
나는 늘 머리에 네 개, 한쪽 다리에 두 개씩 네 개, 손과 팔에 여섯 개의 침을 맞는다. 침이 몸에 박힐 때는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찌릿하다. 몸을 뒤척이기라도 하면 침이 박힌 곳이 아려서 부동자세로 누워 있다. 그렇다, 나는 겁쟁이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채로 마음이 고요해진다. 옆자리에서 누군가 자신의 허리 통증을 토로하는 소리, 규칙적인 기계음, 약방 냄새. 침이 꽂힌 발끝에서 느껴지는 잔잔한 통증. 나는 침을 타고 내 몸 안에 고여 있는 스트레스가 시나브로 빠져나오고 있다고 느낀다. 아주 조금씩 흘러 나와 한 주의 스트레스를 담을 깨끗이 비워낸다.
나는 커튼 너머에 숨죽인 채 치료받는 익명의 사람들과 상냥하게 고독을 나눈다. 한의원 침대 이곳, 저곳에 한데 누워 누구에게도 침해받지 않는 고독한 침술의 시간을 즐긴다.
침을 맞으면서 자꾸 운동 생각을 하게 된다. 돈을 내고, 규칙적으로 건강해지기를 약속하는 일이라는 게 닮아서다. 차이가 있다면 침은 몸을 움직이지 않고, 누워서 맞는다는 거. 운동 약속은 늘 어기던 내가 침을 맞으러 매주 병원에 가는 건 나에게 딱 그만큼의 힘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스쿼트나 런지는 못하겠고, 주 2회 9시부터 딱 한 시간을 비우는 힘.
예전에는 병원에 가면 내가 아픈 사람이 되는 기분이었다. 요즘 나는 한의원에서 작은 고통을 견디는 사람, 점점 나아지는 사람이 된다. 꽉 차 있던 그릇을 비우고, 어느새 깨끗해질 내가 된다.
매일 아침, 저녁마다 한약을 챙겨 먹을 때도 그렇다. 하루의 쓴맛을 견디기 위해 아침밥을 규칙적으로 챙겨 먹는 사람, 쓴 약을 털어 넣은 뒤 마음이 뿌듯해져 신나는 노래를 틀고 청소기를 한번 돌리는 사람이 된다.
며칠 전에는 의사 선생님이 침을 놔 주면서, 좀 어떠냐고 물어봤다. 그리고 곧바로 얼마 안 돼서 잘 모르시려나, 하고 중얼거렸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게도 나아지고 있어요.”
나아지고 있다는 말을 결연하게 해본 일이 언제였는지 문득 아득해졌다. 그날은 나아지고 있다, 는 말을 두 번 정도 더 중얼거려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