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일주일 만에 또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저는 팟캐스트를 사랑해요.
팟캐스트에도 세계관이 있다는 걸 팟덕(팟캐스트 덕후)이 아닌 여러분들은 이해 못 하시려나요?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의 진행자 셀럽 맷과 그녀의 벗들이 풀어놓는 에피소드를 듣고 있으면 그녀들이 나만 몰랐던 개그 마을에서 매일 무지개를 그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팟캐스트 비혼세의 진행자 작가 곽민지와 그녀의 벗들이 풀어놓는 에피소드를 듣고 있으면 그녀들이 나만 몰랐던 해방촌 작은 골목 마을에서 맥주와 털 친구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팟캐스트 세계는 작고, 좁아서 팟캐스트들 사이에서 세계관이 순조롭게 통합되곤 해요. 그들이 세계관 대통합 방송을 펼칠 때면 내가 사랑하는 여러 마을이 연결되면서 나만 아는(사실 팟덕들은 다 아는) 환상의 세계가 귓구멍에서 펼쳐집니다.
저는 주로 설거지하거나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할 때 팟캐스트를 듣곤 해요. 팟캐스트가 없었다면 아마도 우리 집은 지금보다 열 배쯤 더러웠을 거라고 확신해요.
팟캐스트를 듣다가 잊지 말아야 할 문장을 만나면 고무장갑을 재빨리 벗어 던지고, 책상으로 달려가 노트에 뭔가를 끄적이곤 합니다. 어떤 다짐을 하게 하는 문장, 하루를 기분 좋게 하는 문장, 나를 한 뼘 더 사려 깊게 하는 문장, 팟캐스트 보랏빛 어플을 보고 있으면 그것이 문장 창고 같아 보이곤 해요.
남들은 책만큼 좋은 선생님이 없다고 합니다. 저도 책 좀 많이 읽어봤다고 나름 자부하는 사람인데 저를 소소하게 키워준 일상의 1등 스승은 수많은 책을 제치고, 팟캐스트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요.
아마도 팟캐스트에는 게스트, 그리고 진행자들의 밀도 높은 삶, 그 자체가 담겨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팟캐스트 비혼세의 진행자 곽민지는 '포멜론'을 5개월 임시 보호했습니다.
저는 이전까지 임시 보호가 무엇인지도, 왜 필요한지도 몰랐어요. 그리고 임시 보호를 하는 사람들이 왜 입양 대신 임시 보호를 선택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5개월의 임시 보호 여정을 담은 네 개의 비혼세 에피소드(약 8시간가량)를 듣고 나서야 한 사람을, 그 사람의 어떤 행동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어요.
반복해서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해도 머리가 단단하게 굳어 버린 저 같은 사람은 자기 생각을 바꾸기 어렵다는 걸 몸소 깨달았어요.
'포멜론'은 제주 쓰레기장에서 구조된 유기견이었습니다. 입양처가 없었던 '포멜론'에게 임시 보호처도 없다면 추운 겨울을 외부의 컨테이너에서 나야 했어요. 당장 예방 접종해줄 필요도 있었죠. 임시 보호처가 생긴 건 '포멜론'이 당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운이었습니다.
곽민지는 방송 작가입니다. 불규칙한 업무와 외부 일정이 불가피한 프리랜서 업무를 수행해야 했죠. 곽민지는 '포멜론'을 입양하는 중에는 방송작가 업무를 중단했고, 그에게만 집중했어요. 불규칙한 생활 습관을 유지해왔던 그녀는 포멜론에게 아침밥을 챙기기 위해 일찍 하루를 시작했고, 매일 해방촌 골목골목을 산책시켰어요. 그녀는 5개월간 포멜론에게만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포멜론과 평생 함께한다면 방송작가 업무를 병행할 수 없다는 사실도 임시 보호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입양 대신 임시 보호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각자만의 사정이 있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유기견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어요.
곽민지는 부드럽게 말합니다. 임시 보호라는 아름답고, 소중한 행위를 임시라는 단어에 가두지 말라고요. 임시 보호했지만 덜 사랑하고, 덜 걱정하고, 덜 책임감 가진 게 아니라고요.
생각해보면 임시라는 단어에 얼마나 많은 편견이 섞여 있었던가요.
팟캐스트 세계에는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병에 걸렸다 회복 중인 몸을 가진 사람, 젊은 나이 당뇨를 앓아 규칙적인 식습관을 유지하는 사람, 12마리의 털친구들과 함께 사는 사람, 섹스 토이 가게 사장님.
한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하나의 우주를 여행하는 것과 같다는 문장은 수도 없이 많이 들어봤지만 도대체 왜 개개인의 우주를 탐험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몰랐던 저에게 팟캐스트 세계는 답을 주었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 그것은 배움이니까, 라고요.
수박보다 단단한 생각 박스를 깨부수고, 그 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사람들의 세계를 배울 것. 내가 아는 것은 분명 정답이 아니라고 의심할 것. 8시간 넘게 반복해서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깨지지 않을 만큼 내 생각 박스는 단단하다는 것을 잊지 말 것.
팟캐스트 속 사람들도 이렇게 이야깃거리가 많은데 내 주위 사람들은 또 얼마나 이야기가 많을까요. 이제는 그들 한 명 한 명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세계 혹은 소중한 문장 창고처럼 보입니다.
팟캐스트 덕에 이제 사람을 똘망똘망한 눈동자로 바라볼 수 있어요. 당신의 보랏빛 이야기를 내 귓구멍에 속삭여 주세요, 하고요.
당신의 세계관이 궁금해요. 우리들의 세계관이 얽히고 섥혀 내가 사랑하는 팟캐스트 세계처럼 다채롭게 반짝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살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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