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목본동주민센터에 들어가자마자 보인 건 창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손이었어요.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얹어 놓은 사람들의 손, 나는 내 차례를 기다리면서 사람들의 손 모양을 유심히 보고 있었어요.
창구에 앉은 중년 남자와 할머니는 "그 뭐야... 어쩌고"를 신청하러 왔다고 했고, 공무원은 지나치게 높은 목소리로 "그.. 뭐요?" 하고 따져 물었어요. 대충 알아들을 법도 한데 공무원은 끝내 알아듣지 못했고, 남자는 결국 "그 돈 없는 사람들 신청하는..."이라고 말해야 했어요.
할머니는 현대 캐피탈 건물에서 일용직으로 근무하다가 허리를 다쳐 이틀 전 큰 수술을 받았대요. 할머니는 이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대요. 퇴원하자마자 주민센터로 향하는 할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아들이 이놈 하난데, 돈 나올 구실이 없어."
할머니가 창구에 기대어 말했어요.
"할머니.. 집은 월세? 자가?"
할머니는 2000에 60짜리 집에 살고 있대요. 근데 그 말을 하면서 할머니 목소리에 묘하게 힘이 빠졌어요. 들키기 싫은 걸 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할머니는 형편에 맞지 않게 비싼 곳에서 사는 거라고 덧붙여 말했어요.
"사장님 직업이 어떻게 되세요?"
공무원이 이번에는 남자에게 물었어요.
할머니와 남자는 일제히 자신감에 차서 직업이 없다고 말했어요.
공무원은 과장되게 놀란 표정과 말투로 돈 벌 구실이 아예 없는 것이냐고 물었고, 남자는 몸이 좋지 않아 놀고 있다고 대답했어요.
남자와 할머니는 잘 좀 부탁한다며 여러 번 공무원에게 고개 숙여 사정했어요. 그들이 창구에 기댄 듯 앉아 있는 자세는 위태로워 보여 불안했어요. 벼랑 끝에 선 것 같았고, 나랏돈이 아니라면 할머니가 살아갈 방법이 영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할머니와 남자의 목소리를 가만 듣고 있으면 느껴지는 미묘한 낙천성은 무엇일까요. 직업이 없다고, 돈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기분 좋아 보이는 목소리를 내요.
창구에 올려놓은 손은 마지막 동아줄을 잡은 듯 긴장되어 보였는데 그들은 어쩌면 그렇게 편안하고, 다정하고, 심지어는 낙천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요.
그들의 뒤를 이어 복지 창구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두 명의 남자였어요. 보라색 티셔츠를 입은 남자는 빨간색 체육복을 입은 남자를 가리키며 "쟤가 또 그새를 못 참고 자살 시도를 했다"고 말해요.
그들은 지난해부터 함께 주민센터에서 자살 예방 상담을 받아오던 사람들이었어요. 빨간 체육복 남자는 말이 없었고, 보라색 티셔츠 남자만 창구에 절실히 기대어 한 번만 더 상담받을 수 없겠느냐고 물었어요.
"지난달에 받으셔서 이번 달은 좀 어려우세요."
보라색 티셔츠를 입은 남자는 공무원에게 애원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애원해도 되지 않을 것 같아 보이자 빨간색 체육복 남자를 끌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그들은 분노를 표출하거나 억울함을 표하지 않았어요. 그저 들어온 문으로 조용히 나갈 뿐이었어요.
그리고 내 차례가 되었어요.
내가 주민센터에서 해야 할 일은 "희망 두 배 청년 통장" 신청이었어요.
나는 자리에 앉아 공무원을 향해 준비해온 서류를 당당하게 건넸어요. 그는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예의 단호한 말투로 중얼거렸어요.
"가족관계 증명서도 없고 임대차 계약서도 없네요."
공무원의 단 한마디로 나는 그 자리에서 내팽개쳐졌어요.
월세 계약서를 가지러 집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주민센터까지 걸어왔어요. 그리고 20분쯤 기다려 다시 공무원 앞에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었죠. 가족관계증명서도, 임대차 계약서도 있으니 이번엔 꼭 신청될 거라고 기대에 차 있었어요. 그런데 공무원이 내 쪽으로 손을 내밀며 말했어요.
"신분증."
안타깝게도 집에 들른 그 잠깐 사이 신분증을 책상 위에 두고 온 것이 아니겠어요. 나는 일순 목끝까지 욕이 튀어 나왔어요. 그래서 잔뜩 표정을 찡그린 채 공무원에게 물었어요.
"없으면 안 돼요?"
"예 안 돼요."
처음에 친절하게 인사를 하며 창구에 앉았던 나는 인사도 없이 쎙하니 일어나 다시 집으로 향했어요.
땡볕 더위에 십 분 남짓을 집까지 걸어가면서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없는 분노가 내 마음에 가득 찼어요. 그리고 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내가 일상에서 느끼는 사소한 분노란 일종의 안전망 같은 것이지.
분노가 없이 늘 깔끔하다면, 그래서 분노를 삭이는 연습을 할 수 없다면 나는 폭풍 같이 닥친 시련의 서막 앞에 어떤 표정으로 마주설 수 있을까요.
문득 나는 창구에서 보았던 사람들의 덤덤한, 심지어는 쾌활한 표정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신분증을 챙겨 주민센터로 돌아온 나는 번호표를 뽑아 자리를 잡고 앉았어요. 복지 창구에 오고, 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볼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얻었어요.
그들의 손.
무언가를 쥐기 위해 뻗은 손.
그 손에는 숨길 수 없는 간절함이 있었어요.
내 차례가 되어 창구에 앉았어요. 나는 준비한 서류들과 신분증을 공무원에게 내밀었어요. 나도 모르게 다리를 달달 떨고 있었어요. 그리고 내려다본 내 손. 나는 양손을 마주 잡은 채였어요. 남들처럼 내 손도 간절하고, 불안해 보이는구나. 왜 이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손은 이런 모양을 하게 되는 것일까요.
나는 그날 "희망 두 배 청년 통장"을 신청할 수 있었어요. 딱 7000명만 모집해서 나에겐 기회가 없을지 몰라요. 하지만 15만 원을 저금하면 15만 원을 더해주는 이 사업은 진정한 청년의 희망이 아닐 수 없어요. 나에게 기회가 온다면 좋겠어요.
하지만 돈이 사람을 간절하게 한다고 말하고 싶진 않아요.
주민센터에서 내가 본 것은 사람들이 사는 일에 얼마나 간절한가, 하는 거였어요. 우리는 돈 한 푼에 이토록 치열하고, 그건 각자만의 희망을 찾아가는 일이잖아요.
창구에 앉은 공무원은 돈을 집행하는 게 아니라 실체 없는 희망을 집행하는 거예요.
우리는 그 앞에서만 간절해질 수 있어요.
나는 손을 생각하기로 해요.
쥘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무언가를 향해 뻗은 작은 손을요.
살살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