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를 처음 만난 건 그 여름 실외 주차장에서였다. 그녀는 그야말로 내 앞에 갑자기 툭 튀어나왔는데 나는 갑자기 튀어나온 그녀를 보고 고함을 질렀다.
그녀는 나와 너무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20년쯤 흐르면 내가 바로 저렇게 생겼겠구나, 예감하게 했다.
그 무렵의 나는 반복되는 최종 면접 탈락으로 대전에 내려가겠다 다짐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취준 2년이면 할 만큼 다한 것이라고 나를 독려했다.
희는 주차장에서 가장 커다란 차를 골라잡아 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내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탈 건가요?”
처음 보는 희를 쫓아가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나는 재빨리 조수석에 올라탔다.
희는 차를 운전해 영종도로 향했다. 영종도에는 그녀가 소유한 커다란 별장이 있었다. 희는 그곳에서 일주일을 머물고 올 계획이라고 말했다.
희의 별장은 생각보다 더 커다랬다. 별장 바로 앞에는 바다가 흐르고 있었다. 통창 너머로 파도치는 바다가 보였다. 나는 별장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누워 바다를 보며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이미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1층에서 희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 1층으로 걸어 내려갔다.
커다란 식탁에는 그녀가 직접 만든 음식들이 고급스러운 접시에 담겨 놓여 있었다. 제대로 된 집밥을 먹지 못한 지 벌써 석 달이 되었다. 족히 며칠은 굶은 듯한 공복감을 느꼈다. 나는 수저를 들고, 밥 한 숟갈을 크게 떠 입에 넣고, 갈비찜과 김치를 욱여넣었다.
희는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는 나를 보고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어느 정도 배가 부른 나는 그제야 희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볼 수 있었다. 긴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뒤로 넘긴 모습이나 깔끔한 눈화장, 무언가를 응시하는 깊은 눈빛, 그녀는 나보다 고급스러운 인상이었지만 나의 이목구비를 빼다 박은 인상이었다. 순간 식탁 너머에 걸려 있는 작은 거울에 내 얼굴이 비쳐 보였다. 나는 식탁에 수저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나는 내 앞에 앉은 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희를 보며 물었다.
“내가 원래 이런 얼굴이었나요?”
그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거울을 올려 봤을 때 나는 이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희와는 그 별장에서 육 일을 함께 보냈다.
정확히 칠 일째 되는 날 새벽 목이 말라 1층으로 내려갔다. 식탁에는 휘갈겨 쓴 쪽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너는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될 거란다
희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의 옷과 신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일주일이나 더 그녀를 기다렸다. 희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희가 타고 온 커다란 차를 운전해 서울로 돌아갔다.
그때부터였다. 매년 초여름이면 이곳, 영종도 별장에 오게 된 것은.
나는 희가 내게 준 쪽지의 내용을 품고 산다.
-너는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될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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