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적으로 뼈 있는 말을 한다. 내 열등감을 감추고 싶을 때, 상대가 밉살스러워 견딜 수 없을 때, 내가 원하는 걸 전략적으로 쟁취하기 위해서.
뼈 있는 말은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대신 뼈 있는 말은 나를 보호한다.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을 철저히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날카롭고, 단호한 방식으로.
얼마 전 나의 애인 O는 몇 달 뒤 프랑스로 떠나게 될 거라고 말했다.
“일이 틀어지지 않는다면 말이야”
O와 나는 일 년 넘게 연애했다. 우리는 일 년간 각자의 감정에 솔직하기로 약속했고, 실천해왔다.
그날 O의 말을 듣고 내가 느낀 감정은 애석하게도 분노였다. 하지만 나는 연인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는 속 좁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분노를 품고 집에 돌아오니, 못된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O에게 상처를 주고 싶었다. 악독한 말을 내뱉고 싶었다.
다음날부터 나는 O를 만날 때마다 뼈 있는 말만 골라 하기 시작했다.
O: 일 년 전 여름이 참 좋았는데
나: 그렇지, 그때는 네가 날 참 좋아했는데. 돌아가고 싶어라…
O: 유진아, 우리는 꼭 파주에 가서 함께 살자
나: 글쎄 그때까지 우리가 함께할지는 모를 일이지.
뼈 있는 말들이 쌓이니 O는 견디지 못하고 화를 냈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나는 알고 있었다. O가 잘못한 것은 꿈을 찾아 떠나는 것뿐. 나의 잘못은 그런 O에게 화가 난다는 것뿐. 이런 나의 감정은 이기적이다. 그래서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말을 해, 뭐라도 말을 해”
O가 말했다. 하지만 나는 뼈 있는 말 말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악마가 되어 있었다.
이제는 안다. O에게 하고 싶은 말은 “가지 마!” 단 한마디뿐이라는 것을.
말한다고 달라질 일은 없다. 다만 무뼈 워딩의 힘이란 실로 놀라워서 O의 발목을 붙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희망을 품고 O에게 말했다.
“가지 마”
진짜 놀라운 일은 지금부터 시작됐다. 분노에 가득 찼던 내 마음이 땡볕의 얼음처럼 스르르 녹아 버렸다. 이상하리만큼 평온했다. 날카로운 뼈를 걷어낸 민낯의 언어는 초라하긴커녕 반짝였다. O는 나의 진심을 온전하게 받아주었다. O는 진심을 소중히 다뤄주는 사람이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나는 비로소 웃으며 O의 손을 놓을 수 있었다. 이렇게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우리는 결국 서로의 옆으로 돌아오겠지, 그렇게 믿었기 때문이다.
무뼈 워딩은 고속도로 같이 뻥 뚫린 길을 열어준다.
“저어기로 말을 던져. 그럼 분명 길이 열릴 거야.”
나는 있는 힘껏 말을 던진다. 드디어 저 먼 곳의 누군가 내 말을 받는다. 먼 곳의 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무뼈 워딩의 힘은 실로 놀랍다.
그러니 오늘도 다짐한다.
무뼈 워딩을 쓰기로.
무뼈 워딩을 쓰자! 나도 모르는 사이, 놀라운 일이 벌어질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