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길을 걷는데 누군가 내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저어..기"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재빨리 그를 앞질러 걸었다. 사이비 길거리 포교에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사람과 한참 멀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저 멀리서 그 사람 목소리가 또 들렸다.
"저기요,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그의 마음을 알 것 같아서 픽 웃음이 났다. 얼마 전 휴대폰이 꺼져서 목적지 근처에서 몇 분째 헤맨 일이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면 될 텐데 나는 '그런 사람'으로 오해라고 받을까 봐 아무한테도 선뜻 말을 걸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나를 '그런 사람'으로 보지 않을 것 같은 인자한 할아버지 한 분에게 간신히 길을 물었더니 그는 친절하게 목적지까지 나와 동행해주었다.
몇 달 전 늦은 밤에는 친구와 호평동 골목을 걷고 있었는데, 50대쯤 되는 할저씨 둘이 뒤에서 계속 우리를 불러댔다.
요지는 우리랑 한번 놀아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고, 연어든, 소불고기든 원하는 건 뭐든 사주겠다는 말이었다. 우리가 잰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가자 그들은 끝내 이렇게 고함을 쳤다.
"우리 그런 사람 아니에요."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골목을 빠져나가는 동시에 그들 쪽을 뒤돌아보았다.
그들은 누가 봐도 '그런 사람'처럼 보이더라. 그게 웃겨서 친구랑 한참을 웃었다.
그런데 내 얼굴을 뚫어지게 보고 있자니, 나도 거의 '그런 사람'처럼 생긴 것 같다. 남들 보기에 내가 '그런 사람' 처럼 보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란 도대체 뭘까. 어떤 사람들은 지하철 시위를 하는 장애인 단체, 성소수자, 난민들을 '그런 사람'으로 보지 않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씁쓸하다.
그러고보면 우리는 다들 어느 정도 '그런' 요소를 품고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 뭘 그렇게 지레 겁먹고, 당당한 얼굴로, "그런 사람 아니야!" 외치고 있을까.
우리 동네 스타벅스에는 매일 얼음물만 마시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아침부터 밤까지 커다란 책상을 차지하고 있는 젊은 여성이 있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당근마켓 동네 생활 게시글에서 수도 없이 보아왔다. 본인의 아이를 깜짝 놀래켜 울렸고, BJ를 하는지 휴대폰 카메라를 보고 시끄럽게 떠들고, 맨발로 스타벅스 내부를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들. 그들은 간증하듯이 그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날 스타벅스에 갔을 때도 여자는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가 잠깐 화장실을 갔을 때 뒷자리에 앉아 있던 중년 여성 세 명이 그녀의 자리로 몰려갔다. 그녀의 녹화 중인 휴대폰 비디오는 중년 여성들의 자리도 함께 찍히는 구도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들은 녹화를 중지시키고, 동영상을 확인하려는 듯 보였다.
여자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본인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가가 휴대폰을 내놓아보라고 말했다. 어느새 경찰 옆에 붙어선 여자들은 "이 여자가 우리를 찍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결국 영상을 지웠고, 경찰은 일을 마치고 사라졌다. 여자는 가방을 챙겨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문득 고개를 돌린 그녀의 얼굴, 그 억울함이 덕지덕지 묻은 표정은 이런 문장으로 가득 차 보였다.
나, 그런 사람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