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의 영화 <당신얼굴 앞에서>에서 이런 대사를 들었다.
"나한테는 좀 이상한 믿음이 있는 것 같아요. 얼굴 앞에 천국이 숨겨져 있다고 믿는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도 사람의 얼굴 앞에서 천국을 본 적이 있느냐고.
박해영 작가의 <나의 해방일지>는 그런 드라마다. 한 사람의 얼굴 앞에서 천국을 보는, 한 명, 한 명의 사람들을 모두 귀한 존재로 알아봐 주는.
이런 장면을 떠올린다. 산란하는 오색 빛이 번지고, 그 너머로 미정과 현아가 대화를 나눈다. 꿈같기도, 환영 같기도 한 장면. 꿈의 제인, 로랜스 애니웨이가 순간 떠올랐다.
미정은 "사람들이 말을 참 잘하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현아는 자신을 말로 끼를 부리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더한다.
"나는 네가 말로 사람을 홀리겠다는 의지가 안 보여서 좋아. 그래서 네가 하는 말은 한 마디 한 마디가 귀해."
잘난 사람들 말고, 누가 봐도 잘살고 있는 사람 말고, 그 너머에 있는 사람을 귀하게 봐주는 시선이 있다. 바보들을 아름답다고 말해준다.
말도 잘하고, 돈도 많고, 똑똑하고, 그런 완벽한 사람들, 빈틈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슬기로운 의사 생활 같은 드라마를 더는 보고 싶지 않은 이유도 여기 있다. 잘났는데 결핍 있는 사람들 말고, 시작부터 결핍 덩어리라 혼자 깨지고, 부서지고, 울고, 자괴하고, 그러다 극이 끝날 때쯤 그들이 아무튼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볼 때 맘이 저릿하고 희망이 샘솟는다. 나도, 쟤도 같이 조금은 커 있는 기분이 들어서. 혹은 자라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 마음이 되어서.
책을 읽고, 싫었던 내가 좀 좋아진 적은 있는데 드라마를 보고는 그런 순간이 없었다. 그런데 박해영 드라마는 지질하고, 우울하고, 모자라 보이는 내가 그래도 귀하다고 생각하게 해준다.
미정은 말한다.
"다시 태어나면 언니로 태어나고 싶어."
그러자 현아는 말한다.
"전생에 너처럼 살다가 다시 태어나면 막 살아야겠다 한 게 지금 나고, 또 나처럼 살다가 이것도 아닌가 보다 다시 태어나면 단정하게 살아야겠다 한 게 지금 너야.
너나 나나 수없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왔다 갔다 했어."
맞아 그러니까 동경할 사람도, 연민할 사람도 없는 거다. 다 자기 품에 한 움큼의 기쁨과 슬픔을 안고, 자기 것들 견디며 사는 것.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한없이 떠돌면서 이런 생도, 저런 생도 견디면서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것.
다 별거 아니게 만들어 버리는, 오늘의 많은 것들을 무산시키는 대사다.
좀 더 다정해야지 생각하게 만든다. 나한테든, 언젠가 나였을지 모를 남한테든.
미정은 천둥번개가 치면 오히려 차분해진다. 세상이 끝나길, 차라리 다 같이 끝나길 바라니까.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염미정이, 천둥번개를 뚫고 앉아 있는 구씨에게 달려간다. 그리고 구씨를 구해낸다.
누군가를 살게 하고 싶은 마음, 누군가를 채워주고 싶은 마음, 그게 나를 살게 하니까 사람들이 사랑을 하는 걸지도.
무기력을 뚫고 나오게 하는 유일한 수단은 사랑인지도.
누군가는 남에게 기대어 해방되는 건 약한 마음이라고 하지만, 얄밉게도 홀로 바로 서라고, 확신에 찬 눈빛으로 떠들지만, 너희들, 잘난 사람들이 말하는 세상의 정답이 다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박해영 작가는 그런 일을 하는 것 같다.
미정은 말한다.
"어쩔 땐 아무렇지 않게 잘 사는 사람들보다 망가진 사람들이 훨씬 더 정직한 사람들 아닐까, 그래요."
사람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참 쉽다. 그런데 어쩌겠어, 같이 살아야지, 하고 손을 내밀어 주는 마음은 쉽지 않다.
어쩌면 내가 견뎌야 했을 생, 나에게 왔을지도 모를 운명, 사람을 침몰시키는 슬픔을 다정하게 바라보기를, 그래서 아무튼 사람의 얼굴에서만 볼 수 있는 천국을 마주하기를.
요즘은 생각한다. 나는 마음껏 슬퍼도 괜찮은 일을 해야겠다. 슬픈 게 자산이 되는 일, 슬픈 사람들과 같이 슬퍼하는 게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일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