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왔는데 같이 있어야지.”
며칠 전 구파발에 있는 한 찜질방의 60도 소금방에서 듣게 된 문장이다. 나는 그 문장에 흠뻑 젖어 얼른 소금방 밖으로 빠져나와 휴대폰 메모장에 문장을 옮겨 적어 두었다.
이 문장이 밑도 끝도 없이 좋아서, 이상했다.
원래 소금방에는 60대 할머니 한 분이 누워 계셨다.
나도 그녀 근처에 누워 그녀가 하는 것처럼 작고, 뜨거운 소금 돌멩이들을 배 위에 올려보았다. 우리는 서로의 숨소리를 공유하며 느슨한 친밀감을 나누고 있었다.
몇 분쯤 흘렀을까 그녀의 손녀로 보이는 10대의 여자아이 하나가 할머니를 찾아 소금방으로 들어왔다.
“떡볶이 먹을래?”
“응. 있다가! 먹고, 씻고 나가자.”
여자아이는 떡볶이 생각에 신난 듯 보였다.
“그래! 나가 있어.”
“싫어.”
“왜? 뜨겁잖아.”
“같이 왔는데 같이 있어야지.”
여자아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듯이, 할머니는 왜 그런 소리를 하냐고 나무라듯이 대답했다.
그리고 아이는 벌러덩 할머니 옆에 벌렁 드러누웠다. 나와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배 위에 돌멩이를 하나, 하나 장난치듯 올리면서.
나는 아이의 말에 감동해서 눈물이 핑 돌았는데, 할머니는 별 감흥도 없이 “그래라” 답하고 말았다. 나는 할머니의 무심함도 괜히 좋았다. 언제나 여자아이는 할머니와 같이 있어 주려고 할 것이고, 할머니는 그걸 당연한 듯 받을 것만 같아서. 그 관계가 오래간 지속될 것 같아서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 림은 나와 함께 있을 때마다 핸드폰을 많이 본다. 나는 그게 아주 싫었다. (어차피 림은 이 편지를 열어보지 않을 것 같으므로 몰래 뒷담화를 해본다)
애인이나 친구와 카톡을 하거나 인스타그램을 습관적으로 확인하는 그녀를 앞에 두고 있자니, 우린 함께 있지만 꼭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림이 좋아서 같이 있고 싶었다. 서로의 요즘 상태와 감정, 그런 것을 나누고 싶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로에게 집중하고 싶었다. 분명 언젠가의 우리는 그랬고, 그때가 그리웠다.
우리는 두 달에 한 번쯤 만날 뿐이니까, 두 달 중 딱 세 시간 정도는 나에게 온전히 내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루는 림에게 참고, 참았던 화를 냈다.
(핸드폰을 보는 림에게)
“너 뭐해?!”
나는 논리정연하게 림의 행동을 따질 여력이 없어 그냥 씩씩거렸다. 림은 당연하게도 내 분노의 이유를 알지 못하는 듯했다. 모르는 척하는 것이거나.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녀에게 그녀가 내 앞에서 핸드폰을 보는 문제에 대해 단 한 번도 지적한 적이 없었다. 그냥 조용히 화를 축적하거나 상처를 쌓아두었다.
“나 먼저 갈래.”
싸움을 직면할 용기도 내지 못하고 나는 카페에서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우리가 지겨웠고, 그러면서 점점 격차를 좁힐 수 없을 만큼 우리 사이가 멀어졌다고 생각했다.
나는 림이 나와의 시간을 더 이상 즐거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를 이제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사실은 그게 속상했다.
어쩌면 당시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딱 한 문장,
“같이 왔는데 같이 있어야지….”
하고 포장된,
“나 좀 봐줘라~~”
그런 앙탈 같은 애정 갈구였을지 모르겠다.
같이 있고싶다,가 아니라 같이 있겠다,는 욕망보단 당위에 가까운 다짐은 나를 떨리게 한다. 그것은 꼭 사랑의 한 풍경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지겹거나 뜨거워도 “먼저 갈게” 말하지 않고, 옆에 있어 주겠다는 사람이 있었나. 그런 마음을 더 자주 받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더 자주 전해주고 싶었다.
당연한 것이란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서 당연히 함께 있겠다는 약속을 해준다면 그게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단지 찰나일 뿐이더라도.
그래서 나는 소금방을 나오기 전까지 나란히 누워 있는 할머니와 여자아이를 몰래몰래 힐끗거렸다. 벌떡 일어나 식혜를 쪽쪽 마시는 여자아이의 작은 볼은 점점 더 빨개졌다. 할머니는 급기야 눈을 감아 버려서 여자아이는 족히 20분은 더 소금방을 견뎌야 할 것이었다. 나는 내 남은 식혜를 저 아이에게 다 주고만 싶었다.
아이는 다시 털썩 바닥에 드러누웠다. 나는 둘이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소금방을 나섰다. 고개를 돌려 딱 한 번만 더 할머니와 아이를 보았다. 익숙하고 편안하게 서로 옆에 누운 둘을 보니 마음이 자꾸 행복을 향해 기울어서 나도 모르게 사랑을 기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