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내부는 어두웠고, 의자는 없었다. 관객은 1층의 무대에서 벌어지는 풍경을 2층의 불친절한 공간에 앉거나 서서 내려다본다.
고개를 깊숙이 숙여 무대 아래를 바라보고 있는 열 명 남짓의 사람들. 그들은 금방이라도 쇠창살 너머로 떨어져 1층 무대까지 날아 착지할 것만 같았다. 위태로워 보여 살풍경하다.
미약하게 무대를 비추던 불빛이 꺼졌다. 다시 조명이 켜지고, 무대에는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아주 작은 방에 갇혀 있다. 그는 벨소리와 같은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끊임없이 방해받는다. 전화벨 소리가 계속된다. 사다리 끝에 소음의 근원인 전화기가 놓여 있다. 그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보이는 사다리를 타고 오를 수는 없다. 도저히 전화기에 손이 닿지 않는다. 소음에 방해받던 그는 결국 무대 정중앙에서 온몸을 비틀며 신음을 흘린다. 자신을 통제할 수 없다는 듯이 몸을 웅크리고 울기 시작한다.
영영 닿을 수 없는 것 앞에서 울어본 적이 있는가.
지금 당신은 작은 방에 갇혀 있다. 자물쇠의 암호를 풀면 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방은 점점 더 작아지고 있다. 서둘러 암호를 풀어야 한다.
경보음이 울린다.
집중해야 한다.
딸칵,
문이 열린다. 방 너머에는 또 다른 방이 이어져 있다. 이제 다음 암호를 풀어야 한다.
우리네 삶은 비단 잇따른 암호 풀기에 그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매일 방문을 열고 있지만 끝내 마지막 방은 마주할 수 없다. 그건 억만장자도, 경지에 다다른 예술가나 종교인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영영 닿을 수 없는 것 앞에서 울어본 적이 있는가.
무대 위 남자는 이제 자신의 몸을 둥글게 말고, 태초의 접촉처럼 자신을 끌어안는다. 그리고 지나치게 검은 색의 터럭 같은 옷을 급하게 벗겨내기 시작한다. 더이상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이다. 그것은 단지 옷을 벗는 행위는 아니다. 몸 일부의 가죽을 벗겨내는 작업이다. 기필코 검붉은 피가 나고, 상흔이 남는 작업이다.
결국 그는 옷을 벗는다.
옷을 벗은 뒤에도 한참 더 울던 그는 자신이 벗어놓은 가죽을 향해 천천히 다가간다. 조금 전 자신의 몸의 일부였으나 이제 완전히 분리되어 버린 그것, 소파에 펼쳐진 그것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리고 그것으로 자신의 머리를 하염없이 쓰다듬는다.
내가 무대 위 남자를 보며 울음이 터진 것은 바울의 말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죽고, 매일 태어난다.”
그는 옷을 벗으며 하루 치 만큼 죽어가고 있었다.
몇 시간 뒤, 하루 치 만큼 새로 태어나 낯선 육신을 이끌고 하루 치 만큼의 죽음을 향해 비척비척 걸어갈 것이다.
하루 치 만큼의 삶과 죽음, 그 순환의 무게가 내게 올곧이 전해져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무대를 바라보며 생의 민낯을 직면하고 있었다. 그와 같은 투명한 진실은 종종 내게 위로가 되기도 하였다.
단 한 번, 죽음의 문턱에 섰다. 창문을 넘어 우리 집에 들어온 도둑 아저씨는 안방에서 금품을 챙겨 나온 뒤, 부엌에서 수박을 잘라먹기 시작했다. 무더운 여름이었다. 아저씨의 느린 몸동작은 지루한 동시에 공포스러웠다. 그는 나를 향해 칼을 들이밀며 수박을 먹었다. 칼에서는 연분홍빛 수박 국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의 입 주변에도 수박 국물이 흘러 있다. 수박 반 통을 그 자리에서 해치운 그는 이제 칼을 꽉 움켜쥐고 나를 향해 다가온다. 나는 무작정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에게는 지독한 땀 냄새가 났다.
그리고 나는 다시 태어났다.
<이제 다음 시절을 향해 천진하게 걸어갔다>,
와 같은 멋진 결말은 없다.
나는 이 자리에 고여 엮이고, 싸우고, 연민한다. 죽고,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영영 닿을 수 없는 것을 기다리며, 오늘도 하루 치 만큼 죽고, 하루 치 만큼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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