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에는 <퍼펙트 데이즈>라는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면서도 울고, 다 보고 나와서 버스를 탄 뒤에도 울었으므로 나는 이상했다. 이 영화는 아무리 봐도 어디에서 눈물이 터져라, 터져라 주문을 외는 장면이 없었을뿐더러 시종일관 편안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내 눈물샘이 고장 난 건 아닌 것이 내 옆자리 어딘가에 앉은 사람 중 누군가도 분명 훌쩍거리며 울었기 때문이다. 훌쩍, 훌쩍. 우리는 각자의 기묘한 눈물을 어쩌지 못하는 채로 왜 이래, 왜 자꾸 눈물이 나 그런 상태로 영화관을 빠져나왔다.
<퍼펙트 데이즈>는 완벽한 날들에 대한 영화였다. 도쿄에 사는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는 새벽 4시 무렵 창밖에서 들리는 비질 소리를 알람 삼아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화분들에 정성스럽게 물을 주고, 좋아하는 록 음악을 들으며 출근했다. 출근해서는 공공화장실 청소에 최선을 다했다. 그는 일하면서 중간중간 흘러가는 풍경과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는 일도 놓치지 않았다. 그의 입가에는 언제나 옅은 웃음이 지어져 있었다. 그 점이 매우 특별했다. 점심은 늘 나무 아래에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일이 끝나면 공중목욕탕에서 몸을 깨끗이 씻고, 역사의 매일 가는 볶음 요리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집으로 돌아와 책 몇 줄을 읽고 잠에 들었다. 그런 평일이 반복되었다.
주말에는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인화했고, 평일에 읽을 책을 중고 서점에서 딱 한 권 구매한 뒤에 미뤄둔 빨래도 했다. 그리고 선술집에서 술 한 잔을 기울이며 선술집 여자의 멋진 노래를 들었다. 그런 주말이 반복되었다.
일상은 반복되는 동시에 미묘하게 뒤틀렸다. 어느 날엔 청소부 동료가, 조카인 니코가, 선술집 주인의 전남편이 방해꾼처럼 일상에 침입했다. 하지만 히라야마는 그런 침입에 다정하고, 순수하게 반응했다. 과묵하게 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주곤 했다. 동료에게는 돈을, 조카에게는 방을, 전남편에게는 순간을 선물하였다. 히라야마는 그것들이 넘치게 많지도 않았는데 원래부터 자기 것이 아니었다는 듯이 자신이 가진 것들을 모두 다 편안하게 내어주었다.
그는 자신의 일상을 자신이 키우는 식물만큼이나 소중히 가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느끼는 순간을, 나뭇잎 사이 비치는 햇빛을 포착하고, 촬영하는 순간을, 출근길 록 음악 한 곡을 선곡하고 듣는 순간을 그는 사랑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려고 애쓰지도 않으면서 그저 그것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누리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의 모습이 벅차서 나는 급기야 첫 번째 눈물이 났다.
히라야마는 조카인 니코와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즐거운 노래 하나를 부른다.
지금은 지금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 다음은 다음~
그것은 히라야마가 만드는 완벽한 날들에 숨은 비밀을 가르쳐주는 듯하다. 다음은 언젠가 오고 지금은 여기에 있으니까 히라야마는 그저 하루하루 지금을 살고 있었다.
히라야마의 시선은 언제나 조금 약한 것들에 머물렀다. 그가 청소하는 도쿄 화장실 앞 놀이터에는 지게를 든 노숙자 할아버지가 자주 왔다. 그는 나무를 껴안고 춤을 추곤 했는데 그는 할아버지의 춤선에 상상 속 노래를 입혀 그의 춤을 감상하고는 했다. 노숙자 할아버지와 눈 인사를 하고, 그의 춤을 가만히 서서 감상해 주었다.
히라야마의 곁에 머물다 가면 외로운 사람들이 그의 온기를 나눠 받을 수 있었다. 선술집 주인의 전남편은 자신이 큰 병에 걸렸다고 말한다. 그리고 히라야마에게 묻는다.
“그림자가 겹치면 색이 더 진해질까요.”
“글쎄요.”
“이것 봐.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끝나겠어.”
“그럼 우리 같이 해 봐요.”
히라야마는 남자를 데려다 그림자가 겹치는 장면을 보여준다. 두 남자가 서로의 몸을 포개고 바닥에 진 그림자가 짙어졌는지 그렇지 않은지 살펴본다. 아무래도 그림자는 두 개가 겹치면 더 진해진다는 결론을 내린 둘은 그림자 잡기 놀이를 하기 시작한다. 한참을 뛰어다니며 남자는 잠깐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잊었다.
한편 히라야마는 영화 속 그 누구보다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그의 표정이나 대사를 통해 외로움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어쩐지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완전히 익숙해져 더 이상 외롭다고 투정 부리지 않을 수 있을 만큼 진하게 우러난 외로움을 품고 있었다.
조카를 데리러 여동생이 히라야마의 집에 찾아왔을 때 그의 숨겨두었던 상처와 고통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스크린에 올라왔다. 그리고 몇 초 사이 금세 사라졌다. 가족들과 연락을 끊고 혼자 살아가는 그의 사연에 대해 영화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확실한 건 그에게는 일상을 망가뜨릴 만큼 거대했던 슬픔이 있었다. 엇비슷한 나이에 누구에게나 있는 만큼, 혹은 그보다 조금 더 많이. 그가 딛고 일어난 슬픔은 켜켜했고, 그것들 틈에서 히라야마는 히라야마가 되었다. 영화의 숨겨둔 이야기가 아득하고, 슬퍼 동생이 떠나는 모습을 보며 우는 그를 따라 나는 두 번째 눈물을 흘렸다.
히라야마의 유일한 친구는 나무다. 점심시간마다 그는 친구인 나무를 만나기 위해 그 공터로 간다. 그는 나무의 사진을 찍어준다. 특히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 코모레비를 카메라에 담는다. 나뭇잎의 각도, 떨어지는 햇빛, 그것이 만들어내는 단 하나의 순간. 코모레비는 유일하고, 고유하다. 히라야마의 삶이 그러하듯이.
영화의 마지막, 카세트 테이프에서는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이 흘러나온다. 히라야마는 영화 속에서 처음으로 활짝 웃는 미소를 지어 보이는데 그 미소는 우는 얼굴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는 새벽 동이 터오는 도로의 풍경과 니나 시몬의 음성이 포개지는 황홀한 순간에 거의 울고 있었다. 그는 음악을 들으며 울고, 웃고 있었지만 나는 바로 이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며 울고, 웃고 있었다. 나는 세 번째 눈물을 흘리며 이것은 분명 예술에 의한 것이라고 히라야마와 나 모두 예술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예술은 이렇게 연결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