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은 나에게 더 이상 자기 얘기를 글로 쓰지 않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자기는 글감이 되기 충분하지 않냐고.
그것은 아니야, 나는 재빨리 대답했다.
뒤늦게 조금 더 구체적인 변명을 해보려고 한다.
세 가지의 커다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이렇다. 나는 별명이 있는 것에 대해서만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다. 별명이 생기면 그 사람은 하나의 캐릭터가 된다. 그 사람은 내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재해석되고, 각색된다.
캐릭터가 되지 못 한 사람을 글에 쓴다면 나는 탐정 노트를 쓰듯이 그 사람의 동작만을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팔자걸음으로 걷는다, 그는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린다, 그는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다.
이런 단편적인 묘사로는 도저히 한 편의 글을 완성할 수 없다.
쉽게 캐릭터화할 수 있는 사람으로는 어색한 친구와 길거리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이 있다. 공백이 많은 사람. 나는 그들을 맘껏 상상할 수 있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글을 쓸 수 있다.
나는 애인에 대해 대부분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뭔가를 상상해내기 어렵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그에 대해 쓰는 것이 요즘은 난처하다.
그래도 오늘은 애인에 대해 써야 하므로 그에게 적절한 별명을 붙여줘야겠다.
오늘의 기분에 따라 그를 룰루라고 불러보겠다.
또 한 가지의 이유는 이렇다. 룰루에 관해 쓰려고 하면 나에 대해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회적인 내가 아니라 민낯의 나에 대해 써야 한다는 말이다. 어느 정도만 드러내고, 대부분은 철저히 숨기기에 익숙한 나는 룰루 앞에서의 나 또한 완전히 숨겨두기로 결심했다. 왜냐하면 룰루 앞에서 나는 지독하고, 저열하고, 한마디로 별로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무작정 룰루에게 나를 이해하기를 강요한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오늘은 말이 별로 하고 싶지 않은 날이니까 말없이 데이트 하자.
메모지를 룰루에게 내밀었을 때 룰루는 그러도록 하자, 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평소보다 두 배 많은 말을 했다. 데이트가 끝날 때쯤 룰루는 말했다.
“오늘은 네가 말이 없어서 신기했어. 말이 없는 너는 다른 사람 같아. 재미있었어.”
나는 드디어 하루 중 처음으로 입을 열고 중얼거렸다.
“밸런스 게임! 온종일 말을 하는 나와 온종일 말이 없는 나중에 선택해 봐.”
“말이 많은 너.”
우리는 침묵하고, 다시 걸었다.
말이 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그 전날의 룰루가 “넌 말이 참 많아.”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단 한마디의 말이 내 심기를 건드렸다.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아무 말도 아니라고 넘겼을 텐데 룰루가 그러면 꼭 걸고넘어져 괴롭혀야만 직성이 풀린다.
다음번 데이트에서 나는 다시 말을 많이 하는 내가 되어 있었다.
나는 하나도 빠짐없이, 심지어 내가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하는 것까지, 그래서 피곤한 룰루를 지치게 하는 것까지 모든 것을 다 이해받기를 원한다.
마지막으로 요즘의 나는 연애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 나의 연애는 드러내거나 자랑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상은 그렇지 않을까.
누군가를 사랑해보기 전의 나는 사랑 비슷한 뭔가를 하는 사람들이 질투 났다. 그들이 어른스럽게 보이고, 세상에 대한 선구안이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래서 연애하게 된다면 세상에 있는 모든 SNS에 룰루에 대해 자랑하고, 행복을 전시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사랑 비슷한 걸 비로소 해본 나는 알게 되었다. 연애는 자신이 찐따임을 끊임없이 자각하고, 자괴감을 느끼는 과정이다. 무엇보다 연애란 세상을 한 꺼풀 벗겨내기는커녕 세상으로부터 도피해 휴식을 취하기 위한 놀이이다. 별 볼 일 없는 마음과 사건도 재미있어지는 현대인들의 놀이. 일상의 밀도 높은 감정들, 분노와 애정과 깊은 안도를 한순간 밀도 높게 느낄 수 있는 일.
연애는 성장의 동력도, 자랑할 일도 딱히 아니다.
그렇다면 연애를 왜 하느냐 하면 놀이가 즐겁기 때문이고, 연애를 놀이일 수 있게 만드는 룰루가 좋기 때문이고.
룰루에게 쓴 구체적인 변명은 결국 나에게 하는 변명이기도 하다. 가장 솔직하게 내가 룰루에 대한 글을 쓰지 않았던 이유는 룰루에 대한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기를 게을리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단 룰루에게 뿐 아니다. 쏜살같이 지나가는 하루가 벅차 그 모든 것에 대해 들여다보기를 게을리했다.
1년 전만 해도 나는 룰루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편지를 썼다. 그때의 나는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여유로웠다. 다만 여유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생각할 여유를 갖는 일, 그것은 우리의 연애가 즐거운 놀이로 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겠지.
살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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