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아버지가 5년을 끌고 다녔던 검정 자동차 모닝을 처분해야 할 일이 있었다. 어머니가 모닝을 운전하다가 사고가 났고, 자동차는 고칠 수 없을 만큼 심하게 망가졌다.
그래서 아버지는 폐차장에 모닝을 맡겼다. 폐차 기계의 거대한 아가미가 차체를 집어삼켰을 때, 그때 아버지의 표정이란…오래 키운 돼지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처절했다.
“가지 마…”
아버지는 조용히 읊조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와 모닝은 각별한 사이였다.
내가 초등학생 시절 직업이 없었던 그의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은 초등학교가 끝난 나와 동생을 픽업해 집으로 데려가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그 일에 애정이 없고, 지루해했다. 하지만 그 일을 핑계 삼아 답답한 집을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아버지는 우리의 하교 두 시간 전 집 밖으로 나와 모닝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 무렵 그는 모든 라디오 채널의 주파수와 컨셉을 꿰고 있었다.
아버지가 사랑하는 라디오 채널의 코너 하나가 여전히 기억난다. “슬픈 이야기”와 “즐거운 이야기” 각자 한 편씩을 매일 진행자가 읽어줬다. 나는 동시에 읽히는 서로 다른 두 이야기 사이의 간극을 바라보며 슬퍼해야 할지, 기뻐해야 할지 몰라 아버지가 짓는 표정을 따라 했다. 아버지의 모닝에는 수도 없이 많은 이야기가 꿈틀대고 있었다.
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 집에는 내가 2살 때부터 집 한쪽에 자리하고 있던 그랜드 피아노가 있다. 우리 집은 이사할 때마다 크기가 작아지거나 아주 작아지거나 발 디딜 틈 없이 작아지는 식이었는데 아버지는 집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그 그랜드 피아노를 1순위로 사수했다. 침대 대신 피아노를 방안에 두겠다는 심상이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내 방에는 피아노 대신 책상을 놓을 자리가 필요했다. 핑크색 공주풍 책상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그랜드 피아노를 내다 버리라고 성화였고, 아버지의 그랜드 피아노는 어느 날 사라졌다.
그 뒤로 나는 아버지가 어련히 그것을 버렸겠거니 생각했다.
어느 날의 하굣길 나는 창고 너머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의 피아노 소리를 들었다. 그 창고는 우리 집 빌라 1층 화장실 옆에 있는 것으로 상가 음식점의 부재료들을 보관하는 장소였다. 아버지는 그 좁은 창고에 그랜드 피아노를 밀어 넣어 두었다. 아버지는 창고 천장에 머리가 닿지 않기 위해 몸을 잔뜩 수그리고 아람브라함의 궁전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건 유년기 아버지가 배웠던 곡 중 유일하게 기억하는 곡이었고, 지금까지 아버지가 유일하게 연주할 수 있는 곡이었다.
어? 이거!
어머니는 집에 들어 오자마자 아버지가 주워 온 김치냉장고를 발견했다.
그래 맞아!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가 주워 온 낡은 냉장고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신혼 시절 사용했던 그것과 디자인이 같았다.
어머니는 냉장고 문을 한 번 열어보고는 코끝을 찌르는 쉰 김치 냄새에 고개를 저었다.
어쩌라고?
어머니가 물었다.
아버지는 이 냉장고를 고쳐 사용하고 싶다고 했다. 당신들이 사용하던 그것과 다른 것이라고 거듭 설득했지만, 아버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며칠 뒤 수리된 냉장고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작고, 작은 집의 빈 공간을 어떻게든 찾아내 냉장고 자리를 잡았다.
얼마 뒤 나는 알게 되었다. 냉장고가 놓인 자리는 오래전 그랜드 피아노가 빠진 바로 그 자리였다는 사실을. |